문화·문학
산사의 숲
참석자: 강규한, 강서정, 김영미, 김원중, 김재일, 김정희, 김춘희, 민홍석, 박찬구, 손승현, 신문수, 이도원, 이영현, 이종찬, 조채희, 황영심
장소: 미국학연구소 세미나실
『산사의 숲을 거닐다』와 『산사의 숲, 침묵으로 노래하다』라는 책 제목에서부터 벌써 짐작할 수 있듯이, 김재일 선생님(저자, 사찰생태연구소 소장)께서 이끌어 주신 이번 세미나는 불교와 생태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불교와 숲은 전통적으로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는 숲에서 태어나, 숲에서 수행하고 제자를 가르쳤으며, 마지막으로 숲에서 열반에 들게 된다. 이 때의 숲은 나무로 이루어진 단순한 숲이라기보다는 숲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아우르는 소우주를 의미한다. 이처럼 불교가 숲의 종교이다 보니 숲의 모든 생명체 존중에 바탕을 둔 순환과 윤회사상이 자연스럽게 불교 교리로 발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선불교와 호국불교의 영향으로 거의 모든 사찰이 숲에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스님들에게는 정책적으로 산을 관리하는 산감의 역할이 주어진다. 이처럼 사찰 주변의 숲을 지키고 감시하고 가꾸며, 스님들은 자연스럽게 숲과 나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지식을 키워나갔고, 자연스럽게 숲에 대한 생태적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절집은 곧 산을 지키는 산막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찰 주변의 자연 환경 역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파괴를 겪었다. 이 시점에서 김재일 선생님께서는 파괴되는 자연을 보존하기 위한 하나의 지표로서 생태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언급하셨다. 생태 모니터링이란 모니터링 할 특정 지점을 선정한 뒤 주변의 지질, 식물상, 동물상을 시차를 두고 규칙적으로 조사 기록해 나가는 연구 활동이다. 김재일 선생님께서 사찰생태연구소를 세운 목적도 바로 사찰 주변의 자연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기록하여 사찰 환경 보존을 위한 하나의 기준을 마련하고자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번 교재인 산사의 숲 시리즈도 역시 108개의 사찰을 생태 모니터링한 보고서라 할 수 있으며 이는 먼 훗날 사찰 주변의 자연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밝혀 줄 소중한 비교의 근거가 될 것이다.
토론시간에는 강의 내용과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과 문제가 제기되었다. 우선 생태기행(예를 들어 두레생태기행)과 일반 생태관광의 차이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선생님께서는 그 지역 생태에 대한 책임감의 유무가 둘의 가장 큰 차이이며, 원래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생태관광이지만 관광의 방법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환경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셨다. 한편 일반적인 생태 글쓰기의 문제점으로 밤의 생태 기록이 없다는 점, 그리고 바람의 중요성이 간과되었다는 점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하여 비록 전문적 예산과 인력의 부족으로 밤의 생태 관찰이 어렵지만, 동물의 활동이 가장 활발해 지는 밤의 생태계 또한 낮의 생태계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이 논의되었다. 또한 생태 담론에서 식물과 동물 같은 생물뿐만 아니라 흙, 물, 공기, 바람과 같은 생태계를 떠받치는 모든 주변 환경이 총체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언급되었다.
이번 모임은 불교가 자연을 공경하는 종교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부터 현재 계속적으로 파괴되는 자연을(특히 사찰 주변의 자연을) 기록으로 남기는 생태 모니터링이 왜 중요한지까지 불교와 생태, 그리고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