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풍경화 개념의 변천 과정
참석자: 강규한, 권영락, 김길중, 김영미, 김유중, 김정희, 김태철, 마순영, 박찬구, 서화숙, 신문수, 오은영, 이도원, 이동환, 한미야, 황영심
장소: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세미나실
이번 모임은 《자연, 풍경, 그리고 인간》의 저자인 마순영 선생님의 안내로 진행되었다. 풍경화(landscape painting)란 자연을 주제로 삼은 그림으로서, 거기에는 인간이 자연에 관해 갖는 임의적 관점이 이미 내포되어 있다. 즉 풍경화에 나타나는 풍경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편의에 맞게 재단된 것이며, 때문에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요구에 맞추어 풍경화 속의 자연 또한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여 왔다.
서양에서 풍경화가 독립적인 미술의 주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대략 서양 근대의 시작 무렵인 17세기로 추정된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중세 봉건제의 와해와 맞물린 시민계급의 부상, 그리고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근대적 실용정신 등은 신화나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삼던 기존의 그림에서 실제 인간 삶의 터전인 자연을 주제로 한 풍경화로 미술의 관심을 돌리게 한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서양 풍경화의 역사는 17세기의 네덜란드 중심의 북유럽 고전주의, 산업혁명기의 영국과 19세기 독일의 낭만주의, 19세기 프랑스의 자연주의, 그리고 20세기 초의 원시주의, 일차세계대전 이후의 신조형주의를 거쳐 1970년대 이후의 대지미술과 생태미술로 이어진다. 우선 17세기의 고전주의는 합리, 이성, 균형과 같은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였던 이탈리아 미술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당시 대표적인 화가로는 푸생(N. Poussin)과 로랭(Claude Laurrain)이 있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기는 풍경화와 풍경이론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이 낭만주의 시기의 풍경이론은 크게 ‘숭고’(Sublime)와 ‘픽처레스크’(picturesque)로 나뉜다. 버크(E. Burke)는 예술의 핵심을 자연에 대한 무한성이 촉발하는 공포에 가까운 숭고의 감정으로 보면서, 완전무결의 고전적 미 이론과 다른 자신만의 풍경 이론을 구축한다. 이러한 그의 숭고 이론은 터너(W. M. Turner)와 같은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의 이론적 토대를 이루게 된다. 반면 길핀(W. Gilpin)은 있는 영국식 풍경정원과 같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미를 픽처레스크라 명명하였으며, 클로드 로랭의 그림이나 컨스터블의 수채 풍경화가 당시의 픽처레스크 풍경 이론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많은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편 독일에서는, 영국의 숭고미와 픽처레스크 취미와는 별도로, 프리드리히(C. D. Friedrich)의 풍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초월적 세계나 범신론의 흔적이 나타나는 독일만의 낭만주의 풍경화가 자리를 잡게 된다.
19세기로 접어들 무렵 프랑스에서는 고답적 미술계에 염증을 느낀 일군의 화가들이 원초적 자연을 동경하는 자연주의 미술을 추구하게 된다. 바르비종 파라고 불리우는 이들은 직접 자연속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인간의 눈 앞에서 펼쳐진 자연의 모습에 충실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화풍은 이후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로 이어진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풍경화는 고갱과 같은 원초적 세계를 추구하는 원시주의, 우주의 보편적 조화와 이상세계의 동경을 표현한 몬드리안과 같은 신조형주의를 맞이하게 된다. 자연 파괴의 심각성이 고조되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그간의 인간중심적 사유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에코토피아를 추구하는 대지미술이나 생태미술이 생겨났으며 대표적 작가에는 스미슨(R. Smithson), 롱(R. Long), 골즈워디(A. Goldsworthy) 등이 있다.
이후 이어진 토론의 주요한 논점들은 아래와 같다. 우선 에드문드 버크의 《미와 숭고에 대한 우리 관념의 기원에 관한 철학적 고찰》에서 "우리"가 들어간 이유가 제기되었고, 이에 대하여 원래 신의 무한함에서 야기되는 감정인 숭고를 18세기의 영국인들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감정이라는 영국적 미학으로 전유하였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의견이 있었다. 둘째, 역사적 상황과 예술이 서로 관련되어 함께 나아간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앞으로 예술의 전망은 어떠한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당장 정확한 답변을 할 수 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예측가능하다는 답변이 있었다. 셋째, 데이빗 내쉬와 크리스토 클로드 등의 생태미술 작가의 작품 활동의 방식이 과연 진정으로 생태학적인가에 대한 찬반 논쟁이 있었다. 넷째, 풍경(landscape)은 어원적으로 틀(frame)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미 그 속에는 자연을 구획짓는 인공성이 들어있다는 점, 그래서 풍경화 속의 자연은 인간의 시각에 의해 재단된 임의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언급되었다. 다섯째, 서양에서 풍경화가 독립적인 장르로 자리 잡게 된 또 하나의 배경으로서, 신 중심의 중세에는 “나”가 부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물이 그림의 주제가 되었던 반면, 근대에 들어서면서 “나”를 중심으로 사유하고, “나”의 주변을 대상화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풍경이 인간의 관심사로 부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철학적 측면의 이유가 제기되었다. 여섯째, 서양 풍경화가 어차피 인간의 시각에서 재단된 것, 즉 자연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라면, 동양의 산수화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질문이 있었고, 이는 조선의 산수를 공부할 다음 시간에 한 번 더 논의하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영국에서 클로드 로랭과 터너의 위상의 비교에 관한 질문이 있었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영국인 대부분이 클로드 로랭을 선호하지만, 윌리엄 터너도 로랭 못지않은 위대한 낭만주의 화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답변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세미나는 서양의 역사적 맥락과 미술사의 관련성에 입각하여 자연에 대한 더욱 폭넓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었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