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2010

조선 산수 개념의 변천과정

연도 2010
기간 2010. 2. 19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5-02-19
조회
3889

참석자: 강규한, 강서정, 고연희, 김길중, 김영미, 김원중, 김유중, 김정희, 마순영, 민홍석, 서화숙, 신문수, 이선주, 정은귀, 차윤정

장소: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세미나실

  서양의 풍경화에 나타난 자연을 검토해 보았던 지난 모임에 이어, 이번에는 저자인 고연희 선생님의 안내로 《조선시대 산수화: 아름다운 필묵의 정신사》를 통해 우리나라 조선시대 회화에 표현된 자연(산수)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떠한 경우에도 대상은 있는 그대로 재현될 수 없고 거기에는 언제나 항상 바라보는 자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이 책은 당시 산수화를 문학과 함께 향유했던 문인들의 사고와 재현된 산수 이미지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이 책이 형식(스타일) 중심의 회화사가 아닌, 내용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조선시대 산수화의 흐름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의 ‘산수’ 혹은 ‘산수화’의 기본 개념을 짚어볼 필요성이 있다. 유가와 도가 사상이 기본을 이루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산수는 산과 물을 인격적인 덕을 갖춘 비유물로 보았다. 따라서 산수화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도 산수와 더불어 고상한 인격을 가졌다고 간주되었으며, 산수시라는 문학작품과 함께 산수화를 감상하였던 문인들의 시각을 통해 이러한 인격적 산수 이데올로기는 더욱 강화된다. 또한 동양의 산수화는 근대화 과정 중 만들어진 서양의 풍경화 장르보다 훨씬 이전인 중국 수당시대를 거치며 이미 독립된 장르로 정착하였고, 북송대에 이르러서는 가장 중요한 화목으로 인정받으면서 다양한 산수화의 기법 또한 발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동아시아 문화의 산수에 대한 기본개념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산수화는 그 내용에 따라 5국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괄호 속 어구는 산수화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이 책의 장 제목이다) 우선 려말선초(영원과 초월의 시간)에는 새로운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당시 문사들의 바램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구체적인 장소나 특정시간으로부터 벗어난 산수화가 주로 그려졌다. 이는 청산백운을 소재로 한 산수경, 이상화된 중국 실경인 소상팔경, 계절의 변화를 포착한 사시팔경, 혹은 꿈 이야기를 산수로 표현한 몽유도원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중기(숭고의 미, 현인의 공간)로 들어서면서 문인 사회가 성리학을 중심으로 재편되자 산수화의 주제 역시 공자나 주자의 말씀을 따라 문인의 도학적 이상을 반영하게 된다. 주자의 노래와 함께 주자가 머문 곳을 감상하는 무이구곡도, 도학적 선비가 머무는 산수공간을 그린 산수화 등이 이들의 철학적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한편 조선후기(체험과 소유, 서정의 산수경)에는 이전 시대의 이상적, 철학적 산수화에서 벗어나 우리 산천의 실경을 형상화 한 진경산수화가 등장한다. 보통 진경산수화는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 자주적인 한국 회화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어서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당시 산수 유람 같은 문인들의 놀이 문화와 산속에 거주한 생활체험이 산수화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진경산수화가 생겨난 것으로 전자보다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금강전도나 인왕제색도 같은 정선의 대작들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조선말기(산수보다 아름다운 필묵의 세계)는 이전의 이상적 산수경이나 실경 산수보다는 그림에 사용된 필법에 더욱 관심을 쏟은 시기로 특징지워진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필법의 기운을 지칭하는 ‘서권기’나 ‘문자향’ 등이 그림을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되었으며 김정희의 예술론이나 장승업의 그림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함께 나타났던 민화산수(세속의 소망이 담긴 기호)는 산수를 매개로 세속적 욕망이나 기복 추구를 드러난 그림이다. 더불어 이 책은 민화의 기원을 기층 민중에 두기보다는 왕실 화원들이 그렸던 기복적 성격의 그림들이 통속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지는 토론에서 다루어진 논의들은 다음과 같다.

1. 산수화 같은 동양화는 서양화만큼 양식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저자가 양식사가 아닌 내용 중심으로 이 책을 집필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여기에 대하여 고연희 선생님께서는 조선의 산수화도 충분히 양식사의 변천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다만 산수화를 바라보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내고자 하는 의도에서 내용 중심으로 전개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2. 아무리 진경산수화가 실경을 나타낸다고 하지만 사실상 실경이 아니라는 점은 작가도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며, 그러한 자의식이 실경 산수화에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봉우리에 이름 새기기 등)에 대해서, 서양화에 익숙한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전혀 실경이 아닐지라도 그림을 통해 유람의 감흥을 다시 맛보고자 했던 의도가 더욱 컸던 당시 사람들의 정서로는 충분히 실경으로 와 닿았을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4. 우리나라 산수화에 반영된 외국의 영향(명암법은 서양, 민화는 일본)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5. 서양의 풍경(landscape)과 우리나라의 산수가 같은 개념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에 고연희 선생님께서는 서양의 풍경개념이 산수를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고 하셨다.

6. 우리나라 회화의 자주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진경산수화도 ‘진경’이라는 용어 자체를 두고 볼 때 일본의 미술사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하는 조심스러운 의견이 있었다.

7. 서양의 풍경화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산수화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생각과 욕망이 반영된 것, 인간의 시각에 의해 재단된 것이라는 점을 한 번 더 확인하였다. (지난 번 1월 모임의 논의와 관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