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2011

사라져가는 새 / 회화 문화속의 새 - 인문사회적 의미의 새

연도 2011
기간 2011. 10. 21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5-02-19
조회
3939

참석자: 강서정, 고연희, 고형진, 김영미, 김춘희, 박진영, 박찬열, 신두호, 신문수, 이도원, 이영현, 한미야, 황영심

장소: 미국학연구소 세미나실

  이날은 "새"에 관한 두 꼭지의 강연이 있었다. 하나는 국립환경과학원 박진영 연구관님의 "사라져가는 새",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미술사를 연구하시는 고연희 박사님의 "회화 문화속의 새 - 인문사회적 의미의 새"이다. 《새의 노래, 새의 눈물》의 저자인 박진영 연구관님은 1) 새의 일반적 특징, 2) 환경지표종으로서 새의 중요성, 그리고 3) 멸종되고 있는 새의 순서로 강의를 진행하셨다. 다른 동물들과 다른 새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비행 능력일 것이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깃털의 구조나 유난히 발달한 가슴근육, 그리고 빈 뼈 조직 등은 새들이 긴 세월동안 비행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진화해왔음을 확인시켜 준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새들에게도 하늘을 나는 것이 무척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기에, 지표에 먹이가 풍부하고 천적만 없다면 되도록 날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펭귄이나 닭이 비행능력이 퇴화된 조류의 좋은 예이다.

  전 세계에 서식하는 조류는 총 10,000여종에 이르며 이중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530여종이 확인되었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에 비해 비교적 많은 종이 서식하는데, 이는 다양한 철새들의 중간기착지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철새는 고위도의 번식지와 저위도의 월동지 사이를 비교적 규칙적으로 이동하는 새를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 바다로 이루어진 남반구에 비해 자원과 서식 환경이 우월한 북반구에서 철새 이동현상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철새들에게는 월동지나 중간기착지에서 잘 먹고 잘 쉬면서 충분한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만일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짝짓기와 번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조류의 개체수는 금방 영향을 받게 된다.

  새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대표적 환경지표종이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먹이사슬의 상위층에 속하는 새는 수명이 길고 관찰이 쉬워, 새의 개체수에 나타나는 이상 징후는 자연 환경의 변화를 확인시켜주는 바로미터로 작용한다. 새들의 생태에 영향을 주는 주요한 원인으로는 살충제와 제초제, 물의 산도(ph) 변화, 그리고 갯벌 매립으로 인한 서식지 자체의 변화 등이 있다. 특히 인간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간척사업은 조류 생태계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려해 볼 문제이다. 먹이가 풍부하여 철새들의 중간기착지로 이용되는 서남해안의 갯벌이 매립되면 오랜 진화로 얻은 이동 경로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철새들은 소중한 삶의 터전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되며 이듬해 개체수 감소로 바로 이어진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뿐만 아니라 인간에 의한 남획, 희귀새의 밀렵과 밀거래 등으로 인하여 지난 500년간 전 세계적으로 151종의 새가 멸종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재두루미나 따오기, 크낙새 등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국제적인 조류연구기관에서는 새의 멸종을 막기 위해 인공증식과 같은 복원 프로젝트를 시도하기도 하였지만 사실상 성공사례는 없다. 그만큼 새가 일단 멸종에 이르면 다시 되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박 연구관님은 사람도 새도 거대한 생태계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점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새의 멸종은 언젠가 인간에게도 똑같이 닥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새의 노래를 즐기고 싶은 만큼 새의 눈물도 닦아줄 줄 아는 마음”(교재 p.326)으로 생태계와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19세기 미국 문학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passenger pigeon(여행비둘기)의 남획과 멸종, 중국의 4해(四害) 추방운동의 결과, 철새와 텃새의 환경적응력, 새만금 갯벌 매립이 철새에게 미친 영향, 철새의 이동경로에서 기후변화의 영향 등이 언급되었다.

  다음으로 《꽃과 새, 선비의 마음》의 저자인 고연희 선생님께서 한국 미술에 재현된 다양한 새의 의미를 풍부한 그림 자료를 통해 설명해 주셨다. 우리 선조들은 공작, 두루미, 학, 기러기, 오리, 백로, 매, 꿩, 까치 등의 새 그림에 뜻을 담아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 도자기나 조선시대 수묵화에 나타나는 단아한 학은 장수, 천상의 신비, 혹은 선비의 맑고 곧은 기상을 의미하며 고려 불화나 공예품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공작은 실제 궁궐에서 귀하게 키우던 동물답게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조선시대에 <소상팔경>이나 <노안도>로 많이 그려진 기러기는 믿음과 신뢰를 의미하는데, 이는 전통 결혼식 초례상에 기러기 한 쌍을 올리는 풍습으로도 남아있다. 또한 사냥하는 매의 그림에서는 용맹스러움과 힘찬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전통 미술에 재현되어 있는 새는 정확한 과학적 관찰보다는 당시 사람들의 관념을 통해 표현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실물과 다른 형태를 하고 있는 새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작가가 그냥 들은 이야기만으로 그리거나(공작의 머리 위에 화려한 꽁지깃을 달아 놓음), 혹은 어떤 의도를 강조하여 그렸기(삼천년을 산다고 전해지는 학을 나이에 따라 황학, 청학같은 상상의 동물로 표현하여 왕조의 번영을 기원) 때문이다. 또한 같은 공작일지라도 고려시대에는 화려하게 조선시대에는 검박하게 그려지는 것처럼 동일한 새도 시대사조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각각의 새가 특정한 도상을 갖고 있다는 점도 역시 직접적 관찰보다는 마음의 눈이 더 중요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학은 소나무에서 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나무, 학, 해가 늘 함께 나오는 <송학도>를 통해 학의 고고하고 맑은 기운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노안도>의 기러기는 언제나 갈대숲에 내려앉으며 <소상팔경>도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 강남의 경치좋은 동정호 부근의 이상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나무와 학(혹은 대나무와 학), 갈대와 기러기, 동백꽃과 꿩, 백로와 연잎처럼 새와 특정 식물이 관련된 도상은 자연의 조화로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림이 나타내는 고유한 의미를 더욱 북돋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새와 꽃 그림이 하나의 고정된 의미만을 가진다고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림에 대한 무조건적인 과잉 일반화, 혹은 천편일률적인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당부로 고 선생님의 강의는 마무리되었다. 이후 토론에서는 매와 곰이 싸우는 <응웅도>의 의미, 매사냥 그림의 시기적 분포, 알레고리적 해석 이외에 새와 꽃 자체의 아름다움을 그린 그림의 여부 등이 논의되었다. 이번 모임은 "새"라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자연과학적 관점과 인문학적 관점으로 동시에 접근해 본 뜻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