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보르네오의 생물지리학, 콩고의 문학적 상상력 / 《달팽이 안단테》
참석자: 강서정, 고형진, 권영락, 김길중, 김여진, 김영미, 김원중, 김춘희, 박찬구, 신문수, 안보라, 이도원, 이선주, 이종찬, 차윤정, 한미야, 황영심
장소: 미국학연구소 세미나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이종찬 선생님과 신문수 선생님의 강연이 있었다. 첫 번째 강연자인 이종찬 선생님께서는 '보르네오의 생물지리학, 콩고의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19세기 말 제국의 생물지리적 지식에 기반한 영국 소설가 조셉 콘라드(Joseph Conrad, 1857-1924)의 열대성 인식에 관해 말씀해 주셨다. 지리(생물지리학)와 역사(제국주의)와 예술(문학)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선생님의 강연은, 문화사적 관점에서 콘라드를 다룬 대부분의 기존 비평들과 달리 월리스와 스탠리의 생물지리학과 제국주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열대는 북위 23.26도와 남위 23.26도 사이의 가치중립적인 지리적 공간이다. 그러나 유럽은 콜롬버스의 신세계 발견 이래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로의 탐험을 통해 열대를 서구의 인식 틀에 맞추어 “발명”해 왔다. 당시 서구가 열대를 개념화할 수 있었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도구는 바로 생물지리학이었다. 생물지리학은 "풍토"의 중요성과 직결된다. “풍토는 인간과 모든 생명체 - 세균까지도 포함하여 - 의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기상, 지질, 토질, 지형, 경관 등의 총칭“이다. ”사람의 감각, 상상력, 생활방식, 감정이나 충동, 행복“은 모두 풍토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역사는 곧 풍토의 역사이며 풍토는 역사적 풍토“이다. 따라서 풍토에 관한 학문인 생물지리학은 기상학, 토양학에서부터 식물학, 동물학, 경제학,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인간을 두루 아우르는 거의 모든 학문들과 인접성을 갖는다.
근대 유럽이 자신의 기후와 전혀 다른 풍토적 공간인 열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구의 과학 지식의 틀 안에서 열대를 재발견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18세기 라틴아메리카의 식물지리학을 확립하였던 알렉산더 훔볼트, 열대 태평양을 탐험하고 수많은 동식물 표본을 수집한 제임스 쿡과 조셉 뱅크스, 진화론을 통해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열대 지리학을 만들었던 알프레드 월리스와 찰스 다윈 등이 그 선봉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분류학적 관심으로 열대의 생물지리학을 만들어나갔던 유럽은 곧 열대 자연이 서구 사회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열대의 식물상과 동물상에 대한 생물지리적 지식과 열대의 자연 자원으로 부를 창출하려는 제국들의 욕망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나간다.
콘라드는 19세기 말 유럽의 생물지리학으로부터 태동한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를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가로서 말레이 군도와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등 열대 지방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그는 어려서부터 발보아, 아벨 타스만, 제임스 쿡, 멍고 파크 등 유럽인들의 열대 지역 탐험기를 즐겨 읽었으며, "지리학과 몇몇 탐험가들(Geography and Some Explores)"이라는 글을 남길 정도로 지리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1883년 콘라드는 동남아시아로의 항해를 통해 열대 자연과 열대인을 최초로 만나게 된다. 당시 콘라드는 알프레드 월리스의 '말레이 군도(Malay Archipelago)'를 늘 곁에 두고 참조했다고 기록에 전하는데, 이는 월리스의 동남아시아 열대 생물지리학이 콘라드의 열대성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월리스는 19세기 중반 보르네오 북부의 사라왁 왕국에 머물면서 동남아시아의 식물상과 동물상, 지형과 지질을 조사, 분류하였고, ”사라왁 법칙(Sarawak Law, 지질학적, 지리적 변화에 근거한 진화 이론)과 ”월리스 선(Wallace Line,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동물상을 근거로 나눈 경계선)"등을 통해 ‘진화론’을 다윈보다 먼저 제시하였던 영국의 선구적인 생물학자이다.
월리스의 생물지리학을 통하여 자연사적 관점에서 처음 열대를 인식하였던 콘라드는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속에서 ”정밀함과 조화로움을 보라. 저 강인함과 정확함. 거대한 숲이 이루는 균형, 이것이 바로 자연이다. 모든 별과 모든 풀잎사귀들도 역시 그러하다. (《로드 짐(Lord Jim)》)“과 같이 열대 자연의 다양성과 조화를 묘사하기도 하고, ”귀청을 찢을 듯한 소음, 눈을 멀게 하는 불덩이들, 수직으로 무겁게 떨어지는 폭포수로 가득 찬 무한의 공간. (《섬에서 추방당한 사람(An Outcast of the Islands)》)“처럼 온대 풍토에서 자라난 인간의 감각으로는 거의 인식할 수 없는 광활한 열대 자연의 불가해성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열대 동남아시아로의 항해 경험과 월리스의 생물지리학의 영향으로 열대 공간을 자연사의 관점에서 낭만화한 콘라드의 소설들은 당시 제국들이 만들어 온 서구중심적 열대 개념과 다르지 않았다.
1890년 아프리카 콩고로의 여행 후 집필한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에서 콘라드의 생물지리학적 열대성 인식은 제국주의에 대한 회의와 맞물려 한층 더 깊어진다. 《암흑의 핵심》은 유럽 각국들의 아프리카 쟁탈전이 가속화되던 19세기 후반의 콩고를 배경으로 한다. 특히 열대 콩고로부터 경제적인 이익을 얻고자 했던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는 1884년 14개 유럽국가와 미국을 끌어들여 “콩고에 관한 베를린 회의 일반협정” 체결한다. 이 협정으로 콩고의 식민화를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레오폴드 2세는 헨리 모턴 스탠리를 고용하여 콩고를 자신의 사적 소유물로 만드는 동시에 콩고 강을 따라 열대 콩고의 생태계를 조사하도록 명령한다. 스탠리는 선교 제국주의의 첨병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이어 아프리카에 대한 지리적 지식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콩고의 생물지리적 지식은 제국이 아프리카의 자연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무역소나 철도 건설에 이용되었고 이렇게 콩고의 열대 삼림을 훼손하여 만든 교통, 통신수단은 자연의 생태적 균형을 깨뜨려 수면병과 같은 열대 질병의 급속한 확산을 가져온다. 당시 열대 식민화 사업에 걸림돌이 되었던 열대 질병의 문제는 모든 제국들의 큰 관심사였다. 1970년대부터 열대 질병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유럽은 현지에 연구팀을 파견하거나 본국의 연구소를 통하여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힘썼다. 이 과정에서 서구의 세균학과 위생 담론이 만들어지고, 결국 열대는 깨끗한 서구사회를 오염시킬 수 있는 “불결”한 공간, 위생의 이름으로 “통제”해야 할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즉 “제국의 시기를 거치면서 열대 질병은 서구가 열대를 "위생 대 불결"로 개념화하는 지리적 준거틀”로 작용하게 된다.
생물지리학과 의학을 총 동원하여 열대를 타자화하고 그것을 통하여 서구적 정체성을 확립해 온 제국주의적 욕망과 그 이면에 드러난 모순은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에 잘 형상화되어 있다. 콘라드는 열대성의 정수인 "(콩고) 강"을 따라 “야만 풍습 억제를 위한 국제기구”에서 제국의 임무를 수행하러 온, “온 유럽이 함께 만든 인물”인 커츠의 삶을 통해 이 문제를 그려낸다. 커츠는 신을 섬기는 유럽 최고의 지성임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이름으로 악을 자행하고 물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제국의 모순적 실상 그 자체이다. 그러나 뼛속까지 제국주의자인 커츠마저도 유럽인의 몸으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콩고의 무시무시한 야생(wilderness) 앞에서는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콘라드는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한없이 왜소하게 만드는, 무한히 펼쳐진 열대 자연을 자연사적 시점으로 확대하여 중생대 어룡이 살았음직한 곳으로 묘사한다. 즉 콘라드에게 있어 콩고의 열대 야생은 인간의 얕은 지식으로는 도저히 “침투할 수 없는 암흑의 공간”이다. 이런 암흑의 공간에서 창궐하고 있는 열대 질병과 콩고 주민에 대한 잔혹한 살인 행위 등 당시 콩고 사회에 만연한 공포의 분위기를 그는 “무섭구나! 무섭구나!”라고 외치며 죽어간 커츠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서구의 정체성은 문명(civilization), 기독교(civilization), 무역(commerce), 제국주의(colonization), 청결(cleanliness)을 내세운 제국이 열대 야생과 원주민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과학과 문명의 이름으로 포장된 제국의 욕망을 파헤친 소설의 계보는 《암흑의 핵심》 이후 앙드레 지드의 《콩고 여행(Voyage au Congo)》을 거쳐 전쟁과 열대 질병, 그리고 제국의 의료지리의 문제를 다룬 르 클레지오의 《아프리카인(l'Apricain)》으로 연결된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1) 상식적 역사가 아닌 생물지리학이라는 자연과학적 관점(특히 위생과 의료지리학의 개념)에서 제국주의를 재조명한 점이 매우 신선하다는 의견과 함께 2) 제국주의의 해악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무조건 원시성을 낭만화하거나 문명을 부정적인 것으로는 보지는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3) 이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재작년과 작년 직접 보르네오의 쿠칭과 콩고를 다녀오신 이종찬 선생님께서는 “침투할 수 없는 암흑의 공간”이라는 콘라드의 표현대로 도저히 어떤 언어로도 열대를 설명할 수 없었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프리카 구호 활동이나 말라리아 같은 열대질병 퇴치 운동 등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세계가 열대를 보는 시선은 과거 제국들이 문명의 이름으로 열대를 타자화했던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시면서, 열대를 “열대의 눈으로, 열대의 입으로 ...” 편견없이 받아들일 것을 강조하셨다.
이종찬 선생님께서 서구와 열대에 관한 전 지구적 문제를 제기해주셨다면 신문수 선생님의 두 번째 강연은 조그만 달팽이 한 마리의 마이크로 코스모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달팽이 안단테》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는 34세 되던 해 스위스로 여행을 갔다가 원인모를 병에 걸려 20여 년 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 지내야 했다. 그녀는 병문안 차 방문한 친구가 가져다 준 화분에 우연히 묻어온 달팽이를 발견하고 약 1년 동안 달팽이의 생활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이 글은 바로 그 세밀한 관찰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선생님께서는 자연기(nature writing) 장르에 속하는 《달팽이 안단테》를 읽는 방식, 그리고 그 감동의 원천을 (1) 미국 자연기 문학의 한 전범, (2) 잃어버린 장소성(고향, 자연, 본래적 존재양식)을 회복하고자 하는 염원, 그리고 (3) 생명애(Biophilia)의 세 가지 관점에서 말씀해 주셨다.
먼저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월든(Walden)》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자연기(nature writing)는 유럽의 자연기와 달리 “자연에 대한 과학적 관찰과 내면 성찰”이 함께 나타나는 점이 특징이다. 17세기 초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은 거친 북미의 자연을 과학적으로 탐구하여 삶을 안정시키면서, 동시에 자연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지리적 환경이면서도 또 자아를 시험하는 심리적 공간이었던 자연의 양면성으로부터 생겨난 미국의 자연기를 프리첼은 “장소와 의식이 서로를 자극하면서 독특한 긴장관계를 이루었던 역사적 경험의 유산”이라고 이야기한다. 한편 과학적 기술과 시적 성찰이 결합된 미국의 자연기는 과학적 언어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자연현상의 미묘한 느낌과 감동을 비유적 언어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다시 말해 미국 자연기의 과학과 문학의 복합적 언어는 실제를 훼손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연의 총체적 진실에 이르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달팽이의 몸 구조나 섭생, 짝짓기 등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조그만 유리병 속에 갇힌 달팽이와 자신의 처지를 유비하여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는 《달팽이 안단테》도 이런 미국 자연기의 전통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달팽이 안단테》의 또 다른 감동의 원천은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양식인 “장소성”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에드워드 랄프(Edward Relph)는 《장소와 장소상실》에서 다음과 같이 장소성을 정의한다; “장소는 인간의 질서와 자연의 질서가 융합된 곳이고, 우리가 세계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의미 깊은 중심이다. . . 장소는 생활세계가 직접 경험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장소는 의미, 실재 사물, 계속적인 활동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개인과 공동체 정체성의 중요한 원천이며, 때로는 사람들이 정서적, 심리적으로 깊은 유대를 느끼는 인간 실존의 심오한 중심이 된다.” 저자는 달팽이와 자신 모두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환경에 강제로 처해있는, 장소성을 박탈당한 존재의 고독과 외로움을 토로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다는 점을 인식한 후 “우리 모두는 서로서로 볼 수 는 없지만 하나의 공동체였다. 나는 비록 여기 침대에 누워 있지만 그들 모두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우리도 또한 은자들의 공동체였다. (102)”와 같이 정서적 유대감이 충만한 공동체적 장소성이 회복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달팽이 안단테》는 인간 이외의 타 생명체에 대한 “생명애“를 짙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 천성의 많은 부분은 오랜 진화의 과정 중 누적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생명애“를 “생명과 생명의 과정에 대한 천성적인 매력”으로 정의한 윌슨(Edward Wilson)에 따르면 1) 인간은 자연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자연과 유대를 맺고, 자연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선천적 경향을 지니며 2) 자연에 대한 인간의 애호에는 유전적인 근거가 있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 대부분을 자연에서 수렵, 채취로 보내었던 인간은 따라서 근본적으로 자연친화적이다. “달팽이가 먹으면서 내는 아주 작고 정겨운 소리는 내게 특별한 동무와 공간을 함께 쓰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27)”에서 달팽이에게 강한 유대감, 타 생명체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외에도 달팽이 관찰하듯 친구들을 관찰하고 있는 탈인간중심주의, 인간과 타 생물과의 공진화에 대한 인식, 달팽이와 자신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인 망을 이루고 있다는 생태학적 사고 등 《달팽이 안단테》 속에는 “생명애”에 관한 전반적인 통찰이 잘 드러나 있다. 《달팽이 안단테》의 원제는 The Sound of a Wild Snail Eating이다. 저자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밤에 사그락 사그락~ 달팽이가 편지 봉투 갉아먹는 소리가 무척이나 인상 깊어 관찰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토론에서는 먼저 1) 생명의 공진화와 왕따 현상의 관련성이 제시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타인을 용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 심지어 인간과 함께 공진화해 온 바이러스 질병조차 앓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 이타심이 극도로 부족해지고 이는 왕따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표출된다고 한다. 2) 저자가 모성애를 가진 여성이기 때문에 이런 섬세한 글을 쓸 수 있지 않았나, 그리고 활동적인 개나 고양이와 달리 달팽이가 인간과 아무 관계없이 무심하게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에 훨씬 더 밀도있는 관찰이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저자의 스타일 문제도 언급되었다. 또한 3) 저자가 유난히 달팽이와 강한 유대감을 느낀 이유는 감각을 잃고 무력하게 누워만 있어야 했던 자신과 시각적 능력없이 제한된 감각으로만 살아가는 달팽이의 처지를 동일시하였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