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2012

《앵글속 지리학》 / 가나자와와 노도 반도 답사

연도 2012
기간 2012. 2. 10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5-02-19
조회
3930

참석자: 강서정, 고형진, 김길중, 김영미, 김원중, 김춘희, 손일, 신문수, 이규인, 이도원, 이종찬, 전가경, 황영심

장소: 미국학연구소 세미나실

  이 모임에서는 손일 선생님(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의 《앵글 속 지리학》과 이도원 선생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의 '가나자와와 노도 반도 답사'에 관한 강연이 있었다. 첫 번째 순서인 손일 선생님께서는 '사진(photography)을 통한 지리학(geography)적 소통'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다. 회화나 지도가 지리적 시각화의 중심적 도구였던 기간에 비하면 사진은 비교적 그 역사가 일천하다. 하지만 그 어떤 매체보다도 사실성과 현장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디지털 사진기의 보편화에 힘입어 이제 사진은 강력한 지리적 소통의 도구로서 가치와 유용성을 갖게 되었다. 《앵글 속 지리학》도 바로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사진을 새로운 지리적 소통의 도구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신선한 시도의 하나이다. (* 이후 숫자는 이 책의 쪽수이다)

  일반 사진과는 다른 지리적 소통을 위한 학술 사진을 “지오포토”라고 한다. 지오포토는 지오그라피와 포토그라피의 합성어로서 "지리학자가 지리학적 소통을 위해 지리학적 콘텐츠를 담은 사진"(12)으로 정의된다. 구체적인 지오포토를 통하여 시각적으로 전달된 지리학적 정보는 좀 더 추상적인 "지리학적 개념(지표 경관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경관 요소들이 보여주는 독특한 위상이나 배열)"(17)을 재현한다. 때문에 주제보다는 영상미를 우선하는 풍경사진과 달리 지오포토는 찍고자 하는 주제(예를 들면 선상지, 고위평탄면 등)가 명확하고 지리적 사상이 정확히 드러나야 한다. 즉 무엇을 말하려는지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누가 보더라도 그 메시지를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손 선생님의 오랜 경험에 의하면 한국인이 지리적 공간을 가장 편하게 느끼기 위해서는 (1) 공간 지각 범위는 30-40km 이내, 그리고 (2)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10도 정도의 경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왜냐햐면 분지와 산지가 교차하는 우리나라의 지형 특성상 한 눈에 들어오는 분지와 분지 사이의 거리가 30-40km이고, 또 10도 정도의 경사로 아래를 내려다 볼 때(산꼭대기에 내려다 볼 때와 유사) 주변 맥락과 더불어 대상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오포토를 찍을 때도 30-40km 범위와 10도 경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비교적 단조로운 우리나라의 자연색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모임 당일 선생님께서는 이런 공식을 잘 구현하고 있는 월출산, 구례 선상지, 낙동강 삼각주를 담은 지오포토를 여러 장 보여주셨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우리나라의 지형의 색이 정말 단조로운지, 혹은 서양에 비해 색을 보는 눈이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지 등 색상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갔다. 책의 구성과 관련하여서는 독자를 위한 조망점의 구체적 표시, 지형학적인 설명의 필요성 등이 건의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지리학이 융성하기 힘든 이유는 우선 서양에 비하여 인접학문이 빈약하고, 근본적으로 제국의 경험이 없어서 지리적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진도 결국은 관념의 소산이기에 찍는 사람의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지오포토가 지리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정당화될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국제 생물다양성의 해였던 지난 2010년 이도원 선생님께서는 12월 13일에서 19일까지 사또야마 학술대회와 현지답사를 겸하여 일본 가나자와와 노도반도를 다녀오셨다. 가나자와에서는 일본의 야산인 사또야마 학술대회에 참가하시고, 노도반도에서는 사또야마의 이용과 관리를 살펴보기 위하여 관련 현장을 답사하셨는데, 이날 선생님께서는 구체적 답사 내용과 더불어 여행지에서 떠오른 삶과 학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도 함께 말씀해 주셨다.

  일본은 근래 20여년 간의 집중적 연구를 통하여 전 세계에 사또야마를 지극히 일본적인 경관으로 각인시켰다. 사또야마는 원래 마을 가까이에 있는 소나무 숲과 잡목림, 채초림과 같은 야산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마을 사람들은 사또야마에서 땔감, 식량, 그리고 농작물을 위한 비료를 얻었다. 그러나 이제 사또야마는 단순히 공간적 개념을 넘어 그곳에서 혹은 그곳을 매개로 수행되는 인간의 행위(초지 태우기, 농수로 유지, 숲과 대밭 관리, 버섯 양식, 묘지 등)나 주변에 살아가는 동물(솔개, 도룡뇽)로까지 확장되어 숲과 마을, 경작지, 하천을 두루 포함하는 "경관"의 개념으로 승격되었다. 그동안 일본 생태학자들은 정부를 설득하여 사또야마와 사또우미(근해)를 일본 고유의 경관으로 홍보하기 위한 국제행사를 준비하였고 노도반도에 사또야마 사또우미 자연학교를 설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또야마를 야산의 고유 명칭으로 등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앞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야산이 모두 satoyama-like landscape로 지칭될 위험성도 있다) 선생님께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야산에 저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일본이 너무 유난스럽지 않은가 하시면서도 별 것 아닌 것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 세계적 상품으로 만들어 내고야 마는 일본의 집념에서 분명 배울 부분이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하셨다.

  가나자와에 머무르는 동안 선생님께서는 가나자와 거리와 중앙공원, 가나자와 성 등을 둘러보셨는데, 도시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물길, 인도와 차도의 구조와 높낮이, 그리고 중앙공원의 낙엽관리 상태와 겐로구엔 정원의 썩은 고목을 처리하는 방식 등에 깊은 관심을 두셨다. 노도반도에서는 일본의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사또야마의 이용과 관리, 교육 상황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노도목재총합센터, 국가중요문화재인 상시국가(上時國家, 카미토키쿠니케)와 계단식 논인 센마이다, 아름다운 꽃모양의 숯을 구워내는 숯 공장, 그리고 사또야마 사또우미 자연학교를 차례로 방문하는 일정이었고, 특히 노도목재총합센터에서는 목재가 자라는 숲에서부터 목재를 가공하는 제재소, 최종적으로는 가내수공업(목공예와 칠기사업)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사또야마가 관리되는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또한 사또야마 사또우미 자연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스레피 나무와 선생님의 개인적인 인연, 그리고 이동 중 우연히 마주친 한겨울의 무논에서 읽을 수 있는 일본 농부들의 여유와 배려심도 인상깊었다.

  이도원 선생님 강연에 관한 토론에서는 가나자와시의 물길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일본은 가나자와 뿐만 아니라 나라 전역에 물길이 흔하다고 한다. 마을 안으로 들인 물길의 일차적 목적은 배수를 위한 시설이지만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화호 주변의 주민들은 집 옆 실개천에 사는 물고기를 이용해 음식물 찌꺼기를 처리하는 전통가옥양식 ‘가바타’를 통해 자연스럽게 하수를 정화하려는 목적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생태적 목적으로 준설하였다고 하는 우리나라의 하천들은 과연 생태적 기능을 제대로 하는지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한편 자연의 문제만 언급해 온 생태학에서 이제는 인구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한다는 새로운 의견도 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