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웬델 베리의 생태학-농사, 음식, 그리고 기독교 / 북한산에서 볼 수 있는 양치식물
참석자: 김영미, 김원중, 박찬구, 신문수, 이도원, 정은귀, 황영심
장소: 미국학연구소 세미나실
김원중 선생님(성균관대학교 영문과)께서 '웬델 베리(Wendell Berry)의 생태학 : 농사, 음식, 그리고 기독교'에 대해, 그리고 황영심 선생님(지오북 대표)께서 '북한산에서 볼 수 있는 양치식물'에 관해 말씀해 주셨다.
1934년 켄터키에서 출생한 웬델 베리는 50여권의 책을 저술한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이다. 현재 자신의 켄터키 농장에서 몸소 농부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그는 참된 농사의 본질을 자연과 인간 공동체 양쪽을 조화롭게 중재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전통적 방식의 농업은 대지와 가축(노동력과 분뇨), 인간(농부 자신과 이웃 주민들) 등 지역생태계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농부는 인간의 경제와 자연의 접점에서 일하는 "최고 단계의 장인이며 일종의 예술가"(《온 삶을 먹다》 62)로서 장소에 대한 진지한 애정을 가지고 모든 생명체를 연민(sympathy)과 정성으로 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
베리는 농사에 있어서 특히 ‘살림(husbandary)’의 정신을 강조한다. 살림이란 “우리와 우리가 사는 장소와 세계를 보존 관계로 이어줌으로써 생명을 지속시키는 모든 활동”(28)으로서 아껴 쓰고 지키고 모으고 오래가게 하고 보존하는 일, 즉 생산, 유지, 관리 모두에 초점을 둔 행위이다. 그는 현대 농업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런 ‘살림’의 노력 없이 생산만 강요하는데서 온다고 본다. 그 결과 토양침식과 압축, 땅과 물의 오염, 대규모 단일작물 재배에 따른 병충해, 농촌 인구의 지속적 감소, 화석연료와 화학비료, 제초제 과다 사용, 좁은 공간에 감금되어 항생제로 사육되는 가축, 대규모 쓰레기 양산 등의 문제가 야기되었다. 베리는 현대 농업은 더 이상 자연의 순환의 연결고리를 이루지 못하는, 효율성과 수익성이 지배하는 '산업'으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농부의 관심과 돌봄이 골고루 미칠 수 있는 소규모 농장 운영, 관리와 생산의 적절한 균형, 그리고 재배 작물의 다양화와 윤작을 권고한다.
진정한 농사의 본질과 더불어 베리는 현대인의 먹거리 윤리학도 함께 제시한다. 현대 사회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철저히 분리되어 수퍼마켓에서 구입하는 음식들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된 것인지 모르는, 즉 음식이 농사나 땅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인 소비자가 많다. 이 점에 있어서 베리는 대지와 동식물과 인간의 모든 문제를 각각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이해할 것을 한번 더 요청한다. 먹거리의 원천인 생명과 관련된 세계를 정확히 인식해야만 인간은 진정으로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는 ‘책임있게’ 먹기 위한 방법으로 (1) 먹거리 생산에 가능한 한 참여, (2) 음식을 직접 조리, (3) 근거리에서 재배된 식재료 이용, (4) 농부와 직거래 및 계약재배, (5) 산업화된 먹거리 경제의 실상을 정확히 인지, (6) 농사의 모범 케이스 연구, (7) 먹거리가 자라는 과정을 직접 관찰 혹은 경험할 것을 주장하였다.
베리의 생태적 사상은 그의 새로운 기독교 해석과도 맞닿아 있다. 생태계 파괴의 주요 원인으로 종종 지목되는 성경 구절 중 창세기 1장 28절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라.”가 있다. 베리는 '정복'의 원래 히브리어 의미는 ‘다스림을 받는 자가 행복하도록 돌보는 것’임을 상기시키며 이 구절을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공생하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의 이러한 기독교적 생태사상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용익권(usufruct)을 지닌 청지기'로 표현하는 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용익권이란 다른 사람에게 속한 재산을 그것에 해나 손상을 입히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일시적으로 소유하고 쓸 수 있는 권리를 일컫는데,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재산인 세상에 대한 용익권을 가진다는 것은 언제나 겸손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자연을 온전히 보존하는데 힘써야 함을 의미한다. 요컨대 현대의 생태적 위기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베리의 해결책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인간의 의미를 다시 회복시키고 인간도 다른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하나라는 동료피조물성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첫째, 베리의 생태사상은 극단적인 보존론에 치우치지 않기에 더욱 설득력 있다는 점 (자연 보존론자이면서도 농부, 야생지 옹호론자이면서 농본론자), 둘째, 우리나라의 귀농은 애초 정부 시책의 일환으로써 경제적 목적에서 시행되었기 때문에 베리 식의 소농이나 마을 공동체 개념이 불가능하다는 점, 셋째, 베리의 해석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자연파괴를 야기한 산업경제의 첨병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점, 마지막으로 화석연료에서부터 전기, 원자력으로의 에너지 의존도 변천과 그에 따른 위험성 등이 제기되었다. FTA 발효로 우리 농업의 미래와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지는 요즈음 베리의 '살림'의 정신과 '청지기' 정신이 유난히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북한산에서 볼 수 있는 양치식물' 강의에서는 우선 양치식물 연구사를 간략히 개관한 후 우리나라 북한산에서 만날 수 있는 양치식물을 사진과 함께 상세히 살펴보았다. 톱니처럼 까슬까슬하고 섬세한 양의 이빨(양치(羊齒))이 연상되는 양치식물은 사전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 “관다발 식물 중에서 꽃이 피지 않고 홀씨로 번식하는 식물계의 한 문(門, 종속과목강문계). 은화식물의 한 무리로 뿌리ㆍ줄기ㆍ잎의 분화가 분명하며, 물관부와 체관부의 구별이 있는 관다발이 발달되어 있다. 세대 교번을 하고, 배우체가 홀씨체와 독립하여 생활하는데 홀씨체가 크고 배우체는 극히 작다. 진화상 이끼 식물과 종자식물의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 세계에 1만 종 이상이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250여 종이 있다.” (네이버 사전). 양치식물의 기원은 4억 2천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우리가 지금 흔히 보는 종류는 약 7천 5백만 년 전에 등장하였다고 한다. 열대부터 북극까지 거의 모든 식생대에 폭넓게 분포하는 양치식물은 물, 지면, 나무 등 서식 가능한 장소 또한 다양하다.
황영심 선생님께서는 2009년과 2010년 석사 논문 자료조사 차 북한산을 17번 답사하셨다. 조사 결과 북한산에 서식하는 총 650-700여종의 식물 중 양치식물은 약 42종으로 확인되었는데, 주로 그늘지고 통풍이 잘되며 비교적 습도가 높은 계곡 중심으로 자생하였다. 뱀고사리, 가는잎족제비고사리, 애기족제비고사리가 비교적 자주 발견되었고, 그 외에 고란초, 참새발고사리, 산일엽초, 처녀고사리, 넉줄고사리, 부싯깃고사리, 다람쥐꼬리 고사리, 관중, 황고사리, 비늘고사리, 고비, 부채괴불이끼 등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사항은 남방계 식물로 알려진 홍지네고사리를 부암동 마을 근처 등산로에서 발견(기후 변화로 인해 북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후속 조사 필요), 대성문 돌담에서 우드풀 군락지 발견,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던 금강가물고사리를 문수사 근처에서 발견, 국내 미기록종으로 추정되는 지네고사리류를 북한산에서 확인한 점이다.
이어진 질의 응답시간에는 황 선생님께서 양치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 과거 영국의 정원 조경에 반드시 양치식물이 포함되었던 흥미로운 역사, 그와 관련하여 유리용기 안에 식물을 심는 테라리움이 바로 외국의 양치식물을 영국으로 옮기기 위한 목적에서 생겼다는 사실, 그리고 고사리 독은 발암인자로 알려져 있어 주의를 요할 뿐 아니라 고사리에는 비타민 B1을 분해하는 효소가 들어있어 다량 섭취 시 B1 결핍으로 인한 질병의 위험이 있다는 점 등이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