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2013

중국의 균전제와 나무심기 /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연도 2013
기간 2013. 4. 19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5-02-19
조회
3671

참석자: 김길중, 김원중, 박한제, 신문수, 이덕화, 이규인, 이선주, 이영현, 정은귀, 한미야, 한진경

장소: 미국학연구소 세미나실

  먼저 박한제 선생님께서 “중국의 균전제와 나무심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중국의 토지제도 역사, 즉 정전제와 한전제, 그리고 중국 토지제도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균전제로 변천 과정과 중국 세제에 대한 설명에 이어 중국역사에서 각종 나무들이 중국인들의 삶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가르침을 주셨다. 균전제 시대에 淮南子, 白虎通 등에 나무의 중요성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세제인 점과전제와 관련이 있다. 점과전제에 의하면 성인 남성이 있는 집에서는 매년 비단 3필과 면 3근을 국가에 바쳐야 했는데 비단을 세금으로 내기 위해서 각 가정에서는 뽕나무를 심어야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비단이 세금으로 등장한 사건이다.

  균전제의 산물은 주요 곡식을 제외하면 비단, 삼베, 느릅나무 잎과 껍질, 그리고 대추 등이었다. 우선 비단은 중국의 특산품으로, 여러 가지 색깔을 섞어 짠 무늬 있는 비단이 인기였고, 북위시대에 수요가 대단했다고 한다. 북방 유목 민족도 비단을 얻기 위해 중국에 침범하였고 가한(우린 보통 ‘칸’이라고 하지요)의 주요 약탈품이었다고 한다. 비단은 유목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하사품이었고, 이들이 짓는 텐트의 재료로 쓰이는 등, 매우 유용한 옷감이었다. 비단은 실크로드를 따라 로마제국으로 전파되어 로마 황제 칼리쿨라는 비단 옷을 입은 최초의 황제였으며 당시 비단의 무게와 금의 무게는 같은 가치매김을 받았다고 하니 사람들이 얼마나 비단을 소중히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비단 짓는 기술이 비잔티움으로 밀반출되면서 중국의 비단 독점 체제가 무너졌는데, 고려 문익점의 예와 비슷하게, 두 승려가 속이 빈 나무 지팡이 속에 누에고치를 넣어 비잔티움에 몰래 반입하였다고 한다.

  느릅나무는 그 줄기는 목재, 선박재, 건축재, 가구재, 땔감으로 쓰이고 잎과 껍질은 식용과 약용으로 쓰이고 구황작물과 한약재로 쓰이는, 그야말로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나무로서 중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나무이다. 느릅나무의 잎은 죽과 떡을 만들어 먹고 껍질은 이뇨제, 소화강장제, 소독제 등으로 쓰이며 그 뿌리는 각종 소화기 궤양과 비염의 특효약이다. 느릅나무로 만든 면도 유명한데 특히 산서지방의 면식이 유명하다고 한다. 산서 면식은 세계 제일이고 그 종류만 해도 280여 종에 이르는데, 13세기 이태리의 마르코 폴로가 산서지방에 왔다가 실크로드를 타고 이태리로 돌아가 면식을 전파한 것이 지금 스파게티와 마카로니를 포함한 이태리 국수요리의 기원이라고 한다. 느릅나무는 물속에서 썩지 않는 특성이 있어 Waterloo Bridge나 런던의 Old London Bridge, 베니스의 Rialto Bridge 교각 1000 여개의 재료로 쓰였다.

  마지막으로 대추의 경우 중국 북쪽 지방의 대추는 우리나라의 사과크기만큼 크고 북방지역의 유일한 과일로 최소한의 식량 확보를 위해 북위에서는 대추나무의 확보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이처럼 나무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도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김원중 선생님께서는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에 대해 발표하셨다. 김 선생님께서는 이 책에 나타난 소로의 면모는 과학자와 초월주의자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평가하셨다. ‘관찰과 사색이라는 이중의 방법을 통해 과학적 진리와 시적 진리를 결합하는 것이 소로의 목적’(김원중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329)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로의 이와 같은 입장은 자연사에 관한 폭넓은 관찰과 사색을 담은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선생님은 책을 번역하면서 어려웠던 점으로 동식물에 관한 적당한 우리말을 찾는 것이었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이 책에 실린 여러 수필 중 「산책」과 「야생사과」를 백미로 치는데, 여기에 소로가 자연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들이 오롯이 담겨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소로의 원문이 김 선생님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번역으로 재탄생된 몇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자연을 위해, 절대적인 자유와 야성을 위해 한 마디 하고자 하는데 이는 예의 바르기만한 문화나 자유와는 대조되는 것으로서, 인간을 사회의 구성원이라기보다는 자연의 거주자, 혹은 구성원이요 일부로 간주하는 것이다. 문명의 옹호자들은 충분히 많기 때문에 나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아주 강한 진술이 될지도 모르겠다. 문명은 목사, 학교 위원회, 그리고 여러분들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산책」 125)”

  “자연을 그려내는 문학은 어디에 있는가? 바람과 강물을 구슬려 그의 일을 하도록, 그리하여 그를 대신해 말하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농부가 봄에 서리가 들어 올린 말뚝을 박는 것처럼 단어를 그 원시적 의미에 못을 쳐 고정시킬 수 있는 사람, 말을 쓰는 만큼 추론해 내서 그 말들을 뿌리에 아직 흙이 묻은 채로 책장에 이식시킬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은 너무나 진실되고 신선하며 자연스러워 도서관에서 곰팡이 쓴 두 책장 사이에서 반쯤 질식한 채로 있었지만 봄이 다가오면 꽃봉오리처럼 벌어질 것이고, 주변의 자연과 공감하여 충실한 독자를 위해 해마다 나름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산책」156-157)”

  “어느 날 저녁 사과의 돌출 부분이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붉은 저녁놀이 흩뿌려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이 사과의 둥근 몸체 어딘가에 줄무늬나 점무늬를 그려 넣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는 드물다. 사과는 그가 지켜본 아침과 저녁을 기리는 붉은 얼룩을 간직한다. 까맣고 색이 바랜 큰 반점들은 그 사과 위로 지나간 구름과 흐릿하고 눅눅한 날들을 기념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넓게 펼쳐진 푸른 면은 자연의 일반적인 얼굴을 반영하는데 들판처럼 푸르다. 노란 바탕은 보다 순한 맛을 암시하며 추수 때 땅의 모습처럼 황금색인가 하면 언덕의 색깔처럼 적갈색이기도 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 사과들은 불화의 사과가 아니라 화합의 사과이다. 그러나 아주 희귀한 사과는 아니어서 가장 서민적인 사람들도 맛볼 수 있다. 서리에 채색된 이 사과들 중 어떤 것은 한결같이 맑고 밝은 노란색이나 빨간색 또는 진홍색인데 마치 사과의 원구가 규칙적으로 회전하면서 온몸에 햇빛을 골고루 받아들인 것 같다. 어렴풋한 분홍빛의 홍조를 띠고 있는 것도 있고 얼룩소처럼 짙은 붉은 줄무늬를 하고 있거나 혹은 수백 개의 선홍색 선이 사과 꼭지가 옴폭 들어간 곳에서부터 배꼽까지 담황색의 지면 위의 자오선처럼 규칙적으로 쳐져 있는 것도 있다. 어떤 사과는 마치 섬세한 이끼 같은 적갈색의 얼룩이 군데군데 덮여 있고, 진홍빛의 큰 얼룩이나 눈 모양의 점이 찍혀 있는데, 빗물에 젖으면 비와 합쳐져 이글이글 불타는 것 같다. 울퉁불퉁 흉하게 생기고, 꼭지에 가까운 곳은 하얀 바탕색에 미세한 진홍색 반점들이 골고루 뿌려져 있는 것들도 있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느님이 가을철 단풍잎에 색깔을 입히다가, 붓에 묻은 물감을 실수로 흩뿌린 것만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사과는 그 속마저 빨간색이고 아름다운 홍조가 가득한데 너무나도 아름다워 차마 맛도 볼 수 없는, 요정을 위한 음식이다. 그것은 헤스페리데스의 사과이자 저녁 하늘의 사과다. (「야생사과」 253-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