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2014

시원적 자연으로의 초대: 모네의 <수련 장식화>

연도 2014
기간 2014. 9. 12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5-02-20
조회
3701

참석자: 강서정, 김길중, 김영미, 김요섭, 김원중, 김유중, 김이은, 손승현, 신문수, 안보라, 이규인, 이덕화, 이도원. 이종찬, 한미야, 황영심

장소: 미국학연구소 세미나실

  신문수 선생님의 '시원적 자연으로의 초대: 모네의 <수련 장식화>'라는 제목의 발표가 있었다. 선생님은 지난 여름 프랑스 지베르니(Giverny)의 모네(Claude Monet 1840-1926) 가옥과 정원, 그리고 빠리의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을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모네 말년의 대작 <수련 장식화>(Water Lilies or Nymphéas)이야기를 사진과 그림을 곁들여 들려주었다. 다음은 이날 발표의 몇 가지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1. 지베르니와 <수련 장식화>, 그리고 오랑주리 미술관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수련 장식화>는 몇 가지 점에서 유례가 드문 문화예술적 현상이다. 첫째는 동일한 주제의 거대한 8점의 연작이라는 점, 둘째, 화가가 이를 기증하고 국가가 그 전시 공간을 마련해준 점, 셋째, 이 연작은 화가가 20 여년에 걸쳐 만년의 삶 거의 전체를 바쳐 자신의 창조력과 예술적 기량을 검증하고 시험하면서 혼신을 다해 완성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을 통해 좁게는 모네의 예술 세계를, 넓게는 인상주의 미술 전반을, 그리고 시각을 더욱 확대한다면 서양 현대미술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모네가 <수련 장식화>를 그린 모네의 집은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80km 떨어진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지베르니에 위치하는데, 가난한 화가 생활을 해오던 모네는 1883년 지베르니의 한 농가를 세내어 정착하였다. 정착 십년 후 모네는 수련 정원을 꾸미기 시작하고, 일본식 다리 설치하는가 하면, 집에 딸린 널따란 채소밭을 정원으로 개조하였다.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은 사철 계속해서 각종 꽃이 피어나는 화려한 화원으로 탈바꿈되었는데, “모네의 그림 값이 올라 생활이 피기 시작한 1890년대에는 head gardener를 고용하고 5명의 보조정원사를 두어서 관리할 정도로 규모 있는 것”(5)이었고, 모네의 집은 “소규모의 장원”(5)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저택이 되었다. 모네의 수련 연작은 지베르니의 수상 정원이 조성되면서 본격화된다. 오랑주리의 <수련 장식화>는 모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격변의 시기에 그려진 수련 연작의 일부로서 모네는 이 작품을 위해 1914년 지베르니 정원의 서쪽 모퉁이에 거대한 스튜디오(276 ㎡)를 건축했다. 

  모네가 오랑주리의 <수련 장식화>로 발전하게 될 작품에 처음 착수한 것은 1916년으로 추정되는데 모네가 사망하던 1926년까지 화가는 이 작품을 완결 짓지 못했으니, 이 작품은 모네 말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수련 장식화>는 오랑주리 미술관의 1층에 전시되어 있는데 전시 공간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것이 타원형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타원형의 전시실에 들어서는 관람객은 자연스레 벽화에 둘러싸이는 느낌을 갖는다. 벽을 따라 돌면서 관람객 마치 정원 속의 하나의 섬에 들어서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련 연못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또는 그 반대로 타원형 수련 연못의 주위를 걷고 있다는 인상에 젖기도 한다. 모네는 처음에 관람객이 그림을 아래로 볼 수 있도록 전시실을 설계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관람객이 수련 그림을 가장 자연에 근접한 상태에서 관람하길 원했던 그의 소망과 관계있어 보인다.

 

2. 회화적 기법

  모네의 가장 중요한 회화적 모티프는 특정한 순간에 드러나는 사물의 모습, 빛의 효과에 따라 매순간 달라지는 오브제의 시각적 인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 회화적 자세는 사물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을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시각적 인상이 화가의 눈에 굴절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비전의 발현일 수밖에 없다.


  모네의 회화 기법 추이의 변화를 드러내는 것으로써 1890년대의 낟가리 연작이 주목되는 것은 첫째, 처음으로 그림에서 풍경의 지형적 요소가 사라지고 빛과 색채가 압도한다는 점, 둘째, 이들 연작을 그리면서 한꺼번에 여러 캔버스를 준비해 놓고 시간의 추이에 따라, 햇빛, 바람, 구름 등 대기적 요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오브제의 모습을 관찰하며 사물의 동일성이 지속되는 순간을 대면하고자 했다는 점, 셋째 연작 전체가 동질성을 갖는 독자적 앙상블을 이루는데, 이는 그의 표현을 빌면 “보다 진지한 사물의 본질”(more serious qualities)을 포착하기 위한 노력의 표출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인상주의의 근본 원칙인 대상의 순간적 인상, 그 순간성의 재현만으로는 회화적 진실에 이를 수 없다는 회의에 이른다. 수십 점에 이르는 연작은 그런 회의와 의문의 소산으로 그는 자신의 묘사가 본 것을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하는데, 이처럼 단일한 오브제를 다각적인 시각을 통해 재현하고자 한 모네의 연작은 모더니즘 문학의 다원시점을 연상시킨다.


  모네는 1890년대 일련의 연작 작업을 거치면서 점점 대상의 재현보다는 순수한 색채 구성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오랑주리 <수련 장식화>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 평면성으로, 수련은 형체가 흐릿한 모습이고 게다가 캔버스 상의 위치에 상관없이 모두 비슷한 크기로 그려져 있어, 그림은 한편으로는 장식성이 한껏 강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어떤 시원적 혼돈 상태를 환기시킨다. 모네의 회화는 큰 흐름으로 보자면 자연을 그 시원적 형태(물, 빛, 식물)로 재현하는 것이었고, 그에게 자연은 생명성이 충만하고 나름의 신성을 머금고 있는 범신론적 형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수련 장식화>는 이런 점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관람객은 다만 반투명의 물과 그것에 비치는 구름과 하늘, 그리고 그 흐릿한 영상의 주위를 떠다니는 마찬가지로 흐릿한 연꽃들의 세계를 접하면서, 무한경으로 열려 있는 자연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존재의 심연, 깊고 신비스러운 존재의 내면을 응시하고 있다는 느낌에 젖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