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연변의 유적과 생태환경 / 생물학과 미술의 접점들
참석자: 김여진, 김영순, 김요섭, 김이은, 김태연, 박한제, 소수빈, 신문수, 신준환, 안보라, 이덕화, 이도원, 이소요, 이준선, 이희구, 한미야
장소: 미국학연구소 세미나실
먼저 박한제 선생님의 발표가 있었다. 발표자 박한제 선생이 중심이 되어 2014년 9월-10월에 걸쳐 전체 29일(선생님은 25일) 9300km(선생님은 약 8500km)를 답사한 소위 ‘제국의 길’ 연변의 유적과 생태환경에 대한 소개였다. ‘제국의 길’이란 대당제국을 만든 주체세력인 선비 탁발부의 중국 중원 땅으로의 이동경로를 의미한다. 이들은 대흥안령산맥의 동록에 위치한 알선동(嘎仙洞)이라는 동굴에서 출발하여 끝내 중원 관중의 장안(長安:현재의 西安)에 들어가 ‘대당제국’을 세우는 주체세력으로 변신한다. 원래 수렵민이었던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원의 하나인 호륜베얼(呼倫貝爾) 지역으로 서남천한 뒤, 수렵에서 유목민으로 변신한다. 이들은 일단의 기간동안 유목생활을 영위한 후 다시 남하하여 거란족의 웅거지인 요나라 도성 상경(上京) 지역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서진하여 현재의 내몽고 자치주 수도인 후허하오터(呼和浩特)가 위치한 소위 ‘흉노고지(匈奴故地)’로 이동하여 북위 왕조(전신인 代國)를 세움으로서 중원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북위는 250여년간 화북(華北) 지역을 통치·호령하는 왕조로 군림하는 족적을 남겼다. 이후 북위 6대 황제인 효문제(孝文帝)는 국가 경영방침을 한족 (정치-문화) 위주의 소위 ‘한화정책(漢化政策)’ 단행한다. 그의 이런 한화정책에 반발하여 북방 변경을 지키던 선비족 병사 출신들이 일으킨 난이 일으키니 유명한 ‘육진(六鎭)의 난’이다. 이 난에 의해서 북위는 양분되었고, 양분된 서위-북주(영도자:宇文泰)와 동위-북제(영도자:高歡) 양대 세력이 각축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문태 세력이 최종 승리하여 북주(北周)가 북방을 통일한다. 북주에서는 선양(禪讓)혁명에 의해서 수나라가 등장하였고 뒤를 이어 당나라가 등장한 것이다. 육진의 난 이후 형성된 정치·군사세력은 호와 한이 합작된 정치집단이었다. 이후 당나라를 세운 당 고조 이연(이연) 태종(이세민) 등은 수나라 말기의 혼란기를 틈타 산서성 수도인 태원(太原) 지역을 출발하여 도성 장안까지 권력을 쟁취하기 이동을 단행한다. 선비탁발부가 중심이 된 이동으로 북위가 탄생했고, 호한합작의 세력이 종심이 된 군사집단에 의해 당나라가 탄생한 것이다.
발표자는 이러한 제국의 성립·출현과정을 답사하면서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설명하였다. 수렵에서 초원으로, 다시 농경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변방의 오랑캐에서 ‘대당제국’이라 지칭되는 대왕조인 당나라를 건설한 후 당당한 중국인[中華]으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그들이 거쳐 간 유적지를 찾아 일일이 확인함으로서 특히 유목민이 어떻게 농경사회를 통치하였는지, 그리고 그 세력이 어떻게 대제국을 건립하는 대세력으로 변신해 갔는지에 대해 설명하였다. 대당제국이란 호한체제(胡漢體制: 호<오랑캐>와 한<한족>이 서로 반목-질시 투쟁하다가 결국 공존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 후에 나타난), 즉 호-한 통합의 제국이었다. 선생님은 유목민족의 이동이 갖는 의미와 이동로의 선택, 그것이 권력주체 집단의 수적 증대, 구성원의 단결, 지휘자의 역량발휘, 후계자의 능력발견을 통한 후계자 선정의 문제 등 농경지역의 정치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권력 쟁취를 위한 진 여정(Long March to Power)”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하였다.
또한 최근 까지도 순록 수렵인이었던 어원커(鄂溫克) 족 지역을 답사하여 국가의 무리한 정책에 의한 강제 이동이 갖는 수렵민의 애환, 그리고 그 출신 유파(柳芭)라는 여성이 북경 등 도시생활에 대한 부적응으로 인한 비극적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야기를 소개하였으며, 어원커 족의 마지막 추장의 회상을 담은 소설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額離古納河右岸)」이라는 작품을 통해 부족의 강제 이동 정책이 갖는 비인간성 등을 소개하였다. 또한 다양한 사진을 통해 초원의 아름다움, 내몽고와 산서성(평균 해발 800m) 대지(臺地)와 화북 평원(해발 25m 전후)과의 낙차에 따른 생태적 차이, 초원 분지로 형성된 산서성 지역을 통해 유목민족이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 유목민의 생활문제, 섬서성과 산서성 사이의 진섬(晉陝)계곡의 611m의 낙차를 이루며 흐르는 황하가 남긴 풍경들, 특히 황하가 낳은 절경인 호구폭포(壺口瀑布)의 모습을 감상하도록 하였다. ‘등용문(登龍門’)이라는 고사의 원류가 되었던 우(禹)임금의 치수(治水) 치적인 용문(禹門口)의 풍경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서안에 있는 한무제 무릉(茂陵)의 배장묘인 곽거병(霍去病)장군 묘 앞의 마답흉노(馬踏匈奴)상과 당고종과 측천무후의 능인 건릉(乾陵) 앞의 서북호족군장(西北胡族君長)상 조상(造像)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시대 사이의 정책적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즉 한왕조의 대외 폐쇄성이 당왕조의 개방성으로의 전환은 오호십육국이후 유목민족이 중원으로 들어오는 민족이동이 중국의 대이민족관을 변질시킨 결과물이라고 설명하였다. 끝으로 사마광(司馬光)과 사마천(司馬遷)의 묘소를 찾아 두 역사가를 통해 후세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지녀야할 신념과 태도를 확인하고 그를 통해 그간 자신의 역사연구의 역정을 회고하고 반성할 수 있었던 계기였음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박 선생님이 스스로 제창한 학설(호한체제론)과 그간의 주장이 아직도 그리고 이후 추구해야 할 보물과 같은 과제임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자평하였다.
이소요 선생님은 “생물학과 미술의 접점들”이라는 제목으로 ‘바이오아트’의 역사와 개념, 그리고 전개 과정을 비디오 자료를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이번 발표를 통하여 우리가 아름답다고 받아들이는 인식과정을 되돌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생명을 대상화하지 않고는 생명의 중요성을 극대화하여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바이오아트’라는 용어가 서구 미술계에 소개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의 일이고 아시아에서 미술가들의 활동이 시작된 것은 5년이 채 되지 않는다. 따라서 ‘바이오아트’는 일반 대중은 물론 다수의 미술 전문가들에게도 아직 생소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Biology, 즉 생물학에서 비롯된 bio-, 그리고 예술을 뜻하는 -art가 결합된 ‘바이오아트’라는 용어에 대해서 하나의 일관성 있는 정의가 확립된 것은 아니다. 현대의 미술가들 중에서는 고급예술로서 미술의 권력화, 자본화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사람들이 삶 속에서 경험하는 미적 체험과 미적 대상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사회 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미술 활동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이오 아티스트들도 이런 유형의 작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바이오아티스트란 생물, 혹은 생물체의 단위(유전자, 세포, 조직 포함)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이다. 즉, 생물을 재료로 하면서 동시에 연구대상으로써 다룰 수 있는 다양한 기술적, 제도적, 윤리적 기반이 갖추어져 있는 생명과학 전문가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는 작가를 지칭한다. 이들은 일부 전문가가 과학 기술과 제도를 독점하는데 반대하고 일반 대중에게도 과학적 지식이 공개되고 공유될 수 있도록 실천의 계기를 만드는 작가들이기도 하다. 인간의 문화 속에서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여러 생명체들의 존엄성과 윤리적 위상에 대해 고민하고, 이들의 정체성을 좀 더 정당하게 대표할 수 있는 방식을 활동가의 입장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현재 현대미술 현장에서는 캔버스 앞 붓을 든 미술가 대신 케미컬 흄후드(chemical fume hood)에서 마이크로 피펫(micro pipet)을 들고 작품을 만드는 미술가의 이미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길에서 주운 담배꽁초에서 DNA정보를 추출한 후 버린 사람의 신체 정보를 알아내거나 버섯을 증식시켜 친환경 건축자재를 만드는 일이 미술의 영역에 들어왔다. 심지어 개구리 세포를 증식시켜 만든 스테이크로 만찬을 열기도 하고 수혈을 통해 혈액의 일부를 말의 피로 대체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사람도 있다.
이번 강의는 이런 사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대 미술의 일부가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이 사건들의 사회적 의의를 생각해보는 과정이었다. 바이오 아트의 영역은 태아를 담은 표본이 보여주듯 끔찍하거나, 무모하거나, 위험하거나, 비윤리적이거나, 아마추어적인 모험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런 미술이 생명과학과 의미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시도이다. ‘생물학과 미술의 접점들’은 다양한 현대미술 사례들을 통해 위의 질문들을 살펴보면서, 바이오아트라는 미술 현상들에 대해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강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