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나무에서 배우는 지혜" / "소수 집단 문학으로서의<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참석자: 권영자, 김여진, 김영미, 김요섭, 김원중, 김태웅, 박지향, 박한제, 신문수, 신준환, 우종영, 이덕화, 이도원, 정연정, 한미야, 황영심
일시: 2016. 12. 9.
장소: 서울대학교 미국학연구소 소회의실
첫 강연은 “나무의사” 우종영 선생님의 발표였습니다. 나무의사라는 직업은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벽과 대화하는 것” 같은 어려움이 있는 나무의 아픔을 느끼고 병을 진단하며 치료하는 직업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서른 살이 되는 때까지 인생의 고비를 맛보다가 어느 순간 중학생 시절의 나무와 흙냄새의 기억에 이끌려 나무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거기 그냥 서 있던 나무를 말입니다. 선생님의 책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2001)에는 나무를 만나게 된 계기가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습니다.
“나도 사는데, 너는 왜 아까운 생명을 포기하려고 하는 거니?”
죽음의 문턱에서 나무가 나를 부른 거였다. 한번 뿌리를 내리면 평생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그러나 결코 불평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가 말이다. 순간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내 곁에 항상 있었지만 그 존재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나무를 나는 그렇게 만났다. (우종영, 서문)
발표는 나무에게서 배울 수 있는 지혜에 관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사는 나무들은 유전적 요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이 나무들은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리거나 심지어 낭떠러지에서도 자랍니다. 울릉도에 사람이 닿을 수 없는 한 낭떠러지에 있는 향나무의 나이는 2,500년 정도로 추정됩니다. 제주도의 현무암에 뿌리내린 나무들은 죽고 살기를 계속하여 나이 측정이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덩이뿌리처럼 리좀 형식으로 연대하여 사는 나무들도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리고 순천 조계산의 천자암의 나무처럼 특별히 사람들에 의해 보호 받는 나무도 오래 살 수 있습니다. 나무들은 나름의 자기방어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옆의 조각자나무는 줄기에 가시가 많은데 숲으로 들어가면 가시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한편, 나무들이 죽는 대부분의 이유는 인간의 무지나 땅에 대한 욕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보호수의 경우에 나무 주변에 시멘트로 마감처리를 한 것 때문에 뿌리와 땅 속 미생물이 숨을 쉬기 어려워 아이러니하게도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고 하니 우리가 참으로 나무에 대해서 모른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무에 명패를 다는 경우에 우리는 상식적으로 못을 박는 것이 나무에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나뭇가지를 철사로 둘러메기도 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나무의 목을 조르는 것처럼 해가 된다고도 합니다. “빛이 디자인하고 바람이 다듬은 나무”, “나무의 면을 보여주는 가을과 선을 보이는 겨울”, “어깨를 맞대고 자라는 전나무”,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있는 나무”, “머리가 산발한 채로도 주위 환경에 어울리게 서 있는 참죽나무”와 같은 표현이 인상적이어서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이덕화 선생님께서는 <소수집단 문학으로서의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제목으로 ‘노근리 사건’에 대해 중심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는 정은용의 1994년도 작품으로 실지 전투 체험을 소재로 하였다는 점에서 변별력을 갖습니다. 또한 1950-60년대 대부분의 작품들이 6・25 전쟁 후 미국에 의존하는 국민 정서와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추상적 이념에 대한 인식, 북한을 새로운 타자로 간주하는 내용이 그 바탕을 이룬다고 하면, 정은용의 이 작품은 미국의 양면성을 구체적 이미지로 드러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양면성이란, “미국은 우리를 도우며 진실 되다.”는 당시의 국민 정서와 노근리 사건과 같은 민간인 학살의 두 측면을 말합니다. 이덕화 선생님께서는 이에 대한 정은용의 해석을 두 가지로 정리하셨습니다. 하나는 미군의 입장에서는 남한과 북한 사람을 구분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다른 하나는 당시에 “각 부대에 전투지역 주변으로 이동하는 모든 민간인들을 적으로 간주해 발포할 것”이라는 25사단장 킨(William Kean) 의 지시 기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근리 사건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노근리 사건은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앞 경부간 철로변에서 7월 26일 정오경부터 7월29 정오경까지 수많은 피난민들을 미군들이 살상한 사건이다. 미군이 땀을 식히고 있던 임계리 청년들에게 나타나 피난을 보내주겠다고 하자 순식간에 피난을 가기 위해 수백명 (작가 진단으로는 5,6백 명으로 진단)이 몰려왔고, 하루 밤을 하천 바닥에서 머물게 했고, 다음날 노근리 앞까지 왔을 때 미군들은 철로 위에 사람과 소 모두를 집합시켰다. 그러다 얼마 있지 않다 색색이 두 대가 날아 와 포탄을 터뜨렸고, 철로 위에 있던 대부분의 짐승들과 피난민들은 조각조각 포탄에 휘날렸다. 철로 아래위로 도망 간 사람들을 따라 기총소사의 총탄과 폭탄이 떨어졌다. 겨우 살아남은 피난민들은 철로 밑 두개의 터널 속으로 숨어들었다. 터널 속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살아남은 피난민들은 터널 속에서 생리 작용으로 잠시 터널을 빠져 나갈 때마다 미군들이 쏘는 총탄에 쓰러져야했다. 작가의 딸 2살인 구희조차 할머니가 손녀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터널을 벗어났다 총알에 맞아 죽음을 맞았다.미군들은 마치 한국인의 씨를 말리려는 듯 총알을 쏘아댔다. (이덕화 7)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의 집필 목적은 첫째로 44년간 묻혀있던 노근리 사건을 한국과 미국 정부에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작가는 당시 경찰이었으며 동시에 자식 둘을 잃은 아버지로서의 개인적 체험과 함께 미군에 입대한 복희의 입장을 서술하고 당시 실정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를 근거로 상황을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두기 보다는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 본성의 죄”에 기인한다는 데에서 찾으려고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