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생태문화연구회: “어느 말벌 여전사의 사랑이야기” / “현대 진화론과 인간”
* 참석자: 권영자, 김요섭, 김종철, 김춘희, 신문수, 안보라, 우종영, 이규인, 이유경, 이정학, 황영심, 이선주
* 일시: 2017. 3. 10.
* 장소: 서울대학교 미국학연구소 소회의실
지난번 꿀벌에 관해 발표를 해주셨던 김요섭 선생님께서 “어느 말벌 여전사의 사랑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일본작가 햐쿠타 나오키(百田 尚樹)의 <딸들의 제국>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한 장수말벌(Vespa mandarinia)의 25일 간의 짧고 치열한 삶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여왕벌과 일벌 그리고 수벌을 구성원으로 통합된 전체로서 기능하는 민주적인 독립체인 꿀벌사회와 달리 장수말벌의 사회는 여왕벌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전제주의 사회와 유사합니다. 장수말벌의 경우 가을에 태어난 여왕벌이 자라서 한 마리의 수벌과 단 1회만 교미한다고 합니다. 한 벌집에서 자란 300마리 정도의 여왕벌들은 긴 겨울잠을 지낸 후 벌집을 만들 땅의 한 구멍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게 되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구멍을 차지하게 된 최후의 여왕벌은 자신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종의 제국을 형성하게 됩니다.
<딸들의 제국>의 원제목은 『風の中のマリア』인데 원제목에 나오는 마리아가 여왕벌이 아니라 ‘아스트리드’(스칸디나비아 지역의 royal name으로 divine beauty 혹은 divine strength라는 의미)라는 여왕벌에게서 태어난 일벌이라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이 소설은 의인화된 한 장수말벌의 내면적인 성장을 다루는 이야기인데 자신을 제국의 소유물이라고 믿으며 제국 최고의 전사가 되기 위해 전심하던 일벌인 마리아는 자신과는 다른 무리의 수벌인 베발트를 만나게 되고 아름답다는 뜻밖의 칭찬과 함께 일벌도 스스로 산란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게 됩니다. 마리아는 베발트와의 강렬한 만남 이후 아스트리드 제국의 붕괴를 목도하면서 결국 여왕벌은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아스트리드가 아닌 다른 일벌도 난소를 발달시켜 무정란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과 자신을 가둔 제국의 테두리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비행을 떠나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각성하고 짧은 삶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최근 다윈 3부작(『다윈의 서재』, 『다윈의 식탁』, 『다윈의 정원』)을 완간하신 장대익 선생님께서는 “현대 진화론과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다윈의 지식정원에 피어난 새로운 인간학,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 ‘밈(meme)’의 탄생과 진화인간학 등에 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난 갈라파고스에 대한 공부의 후속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다양한 메타포(피조물, 동물, 블랙박스, 다윈기계, 유전자기계, 밈기계..)들과 현재의 정교한 자연을 가능하게 한 자연선택이론에 대한 간단한 소개(변이의 존재->적합도의 차이 유발-> 유전된다면 진화가 발생한다. e.g.잎벌레)에 이어 Cui bono question(누가 이득을 보는가의 질문 즉 최고의 수혜자는 행동 당사자가 아니라 행동을 하게끔 만든 유전자일 것이다)이라는 진화생물학의 획기적인 발견(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좀비곰팡이에 감염된 개미(zombie ant)와 연가시 등 마음을 조종하는 기생자들에 대한 비유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또한 인간은 그 유전자의 고리를 끊고 그 이상의 단계에 이르렀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진화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근거: 수렵채집기의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담에 따른 기능 발달의 차별화, 짝짓기 전략의 차이, 양육투자이론,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현상(cospicuous consumption)). 한 실험에서 실험자의 모든 행동을 따라 하지 않고 사탕을 얻을 수 있는 행동만 따라 한 침팬지와는 달리 실험자의 모든 행동을 모방한 아이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 이외에 밈(meme)으로 설명되어야 할 부분 역시 존재합니다. “모든 세포의 꿈은 두 개의 세포가 되는 것이다”라는 유전자의 관점과 “학자는 도서관이 또 다른 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라는 밈의 관점의 차이는 꽤 흥미롭습니다. 후버댐이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은 self-normalizing하는 인간의 밈이 만든 표본들이며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나 자유, 정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메카의 카바신전에 모인 백만 명의 순례자들, 유튜브까지도 밈의 자율성으로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치를 만들고 가치는 우리를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our buildings shape us”라는 처칠의 말은 유전자와 함께 인간을 끌고 가는 양대축의 하나인 밈(meme)의 강력한 힘(active한 teaching의 힘, 기준을 만들어 그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힘)을 시사하는 언급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