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생태문화연구회: "식물원의 개념, 역사 및 우리나라 식물원의 발전과정과 방향" / "반고흐의 풍경화: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참석자: 강혜순, 권영자, 김원중, 김종철, 박찬구, 신문수, 안보라, 이덕화, 이선주, 한미야, 황영심
일시: 2017년 10월 13일
장소: 미국학연구소 소회의실
먼저 전정일 선생님께서는 <식물원의 개념, 역사 및 우리나라 식물원의 발전과정과 방향>이라는 주제에 대해 조망해 주셨습니다.
싱가폴의 Gardens by the Bay, 미국 국립 수목원, 영국의 큐 식물원(왕립식물원)과 에덴 프로젝트(구 탄광지역, 식물학자가 아닌 artist에 의한 디자인), 철물구조인 아일랜드의 국립식물원, 독일의 그루가파크 식물원, 네덜란드의 위트레스트 대학 식물원(400년 역사, 과거 요새였기 때문에 ‘해자’(垓字)가 있음)과 트롬펜베르흐 식물원,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식물원, 우리나라의 신구대학교 식물원과 국립수목원, 천리포 수목원, 평강식물원, 한택식물원 등에 대한 많은 사진자료들과 설명을 통해서 결국 식물원도 각국의 문화와 기술, 경제력이 통합된 복합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Gan(둘러싸다, 공간)+Oden(에덴, 즐거움)의 어원을 가진 정원(Garden)은 15세기 중엽 약초원을 시초로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원과 공원, 식물원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private gardens, public gardens, community gardens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정원에서 식물원(수목원)으로 초점이 옮겨간 이후에 다시 정원을 중심으로 한 관점으로 회귀하였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한편 식물원(수목원)에서는 학술, 교육, 국제적 협력, 보건휴양 등의 사회봉사활동과 식물 종 보존을 통한 부가적 가치(아스피린, 항암제, 생태계 유지 etc.)를 창출하기도 하는데 표찰에 도입번호를 기록하는 등의 문서화작업과 각종 관련 입법이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사진마다 카메오로 사모님을 등장시키시는(^^) 위트로 발제 내내 회원들의 웃음을 유발(!)하신 라영환 선생님께서는 <반고흐의 풍경화: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라는 주제로 고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의심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림에 재능을 가진 모친 밑에서 습작을 해오던 고흐는 화상(畫商), 기숙학교의 보조교사 등으로 일하던 중 성직자의 길을 대신해서 “복음 속에 렘브란트가 있고 렘브란트 속에 복음이 있다”라는 믿음 하에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라영환 선생님께서는 기존의 상식과는 달리 고흐는 가난하지도 염세적인 사람도 아니었다고 추측하십니다(흥미롭게도 고흐의 자살도 의심스럽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오히려 고흐는 지극히 긍정적인 인물로 슬픔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희망을 보고자 했다는 의견은 회원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습니다.
“일상적인 것들이 소중하다”고 이야기했던 루터(Martin Luther)의 말처럼 고흐의 그림들도 ‘일상성이 지닌 아름다움’을 탐구하고자 했는데 특히 헐어버린 <구두>나 <감자먹는 사람들>, <숲 속 오솔길> 같은 풍경화들은 ‘일상적인’ 것들을 드러냄으로써 소외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자 하는 고흐의 의도를 짐작케 합니다. “선 하나라도 그리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다”는 그는 그림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지극한 연민으로 인해 창녀와 결혼하기도 했는데 늘 누군가와 함께 세상을 걷고자 했으나 애석하게도 세상이 그를 이해하지 못해 혼자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인물인 듯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