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생태문화연구회: "캠퍼스의 나무 구경" / "고야의 '검은 회화들' Pinturas negras"
1. 노천명 시인이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른 화려한 시간, 국내외적으로도 많은 격변의 지점이기도 한 5월의 하루, 지난 11일 금요일에 있었던 생태문화연구회 모임에 관한 후기를 올립니다. 권영자, 김여진, 김영미, 김정희, 박지향, 박한구, 박한제, 신문수, 안보라, 이규인, 이덕화, 이선주, 이유경, 정연정, 한미야, 황영심(이상 존칭 생략, 가나다 순) 16명의 회원이 모임에 참석해주셨고, 서울대 교정안내와 고야(Francisco de Goya)에 관한 발제는 각각 권영자 선생님과 김정희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2. 먼저, 퇴직 후 숲 해설가로 활동 중이신 권영자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1시간가량 서울대 교정의 나무들을 돌아보며 생태의식을 고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정의 다양한 수목들을 살펴본 과정은 첨부하는 사진들로 일부 대신하고, 선생님께서 회원들에게 전해주신 몇 가지 설명들을 더하고자 합니다.
능수버들, 갯버들, 콩버들, 왕버들 등 국내에 40여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고 아스피린과 주방용도마의 재료로 사용되는 버드나무는 속성수로서 비교적 수명이 짧은데 특이한 점은 봄철에 날리는 꽃가루로 알려진 것이 실은 종모(종자에 붙은 솜털)라는 사실입니다.
‘hawthorn’, ‘mayflower’라 불리기도 하는 산사나무는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열매가 술을 담그는 재료나 간식(중국의 ‘탕후루’)으로 애용되기도 하고 야생 조류나 포유류에게 훌륭한 양식이 된다고 합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는 크게 육송(적송), 반송, 백송, 해송 등으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금송정책으로 보호되기도 했던 반면 일본의 경우 혼다박사가 주장한 적송망국론 등으로 인해 우점종이 되는 것이 경계되기도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솔갈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밖에도 목재로서 가치가 큰 신갈나무(참나무류),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타는 자작나무, 북벌계획을 세운 효종이 활을 만들기 위해 많이 심었으며 팔만대장경의 목판으로 사용되기도 한 왕벚나무, 바늘 같은 잎으로 쥐의 침입을 막아주었던 노간주나무, 우리나라에서 털개회나무(수수꽃다리 혹은 정향나무)라고도 알려진 라일락 등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일명 ‘미스김 라일락’(1947년 군정청에 근무했던 식물채집가 Elwin M. Meader가 도봉산의 라일락 종자 12개를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한 후 여비서 미스김의 이름을 따서 신품종으로 등록함)은 우리의 자생식물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운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가로수로 널리 쓰인 플라타너스, 은행나무, 이팝나무 등(한국 가로수의 변천: 플라타너스-> 은행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이팝나무)과 청아한 흰색의 꽃잎(십자가 모양)을 자랑하는 산딸나무, 2동 건물 뒤에 높이 솟아있으면서 5-6월에 튤립모양의 노란색 꽃을 선보이는 백합나무(튤립나무, 산림청에서 권장하는 경제수이며 꿀을 딸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등도 관악의 운치를 더해주는 수목들이었습니다. 한편 임진왜란 당시 판옥선의 뱃머리로 사용될 정도로 단단한 느티나무는, 거목으로 자라서 사람들을 너그럽게 품어주고 유익한 인재로 사용되라는 취지로 서울대학교의 교목으로도 지정된 바 있습니다.
3. 이어 서울대 미대에 재직하고 계시는 김정희선생님께서는 <고야의 '검은 회화들' Pinturas negras>이라는 주제로 스페인의 화가 고야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검은 회화들>>은 고야가 귀머거리의 집으로 불린 가옥의 1,2층 벽에 1819년에서 1824년 사이에 유화로 그린 벽화 14점을 칭하는데 1889년 이후 프라도미술관에 기증되어 보관되고 있습니다.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이 그림들을 본 이탈리아의 한 평론가가 “너무 어둡고 이상하며 비정상적이고 악마적이어서 중세의 요술을 연상시킨다”고 언급할 정도로 수수께끼 같은 꿈이나 신화, 종교재판, 악마, 기형적인 인물들이 회화 속에 묘사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1790년대 만연했던 계몽주의에 대한 회의와 격변하는 스페인의 정치상황(끊임없는 내전)에 대한 안타까움, 노년에 따른 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갈등 등 고야의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표현된 것으로 해석하십니다. 특히 1층 맞은 편 방의 <아들을 잡아먹는 새턴>과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2층 방 입구 벽에 그려진 <개>의 기본배치구조를 볼 때 벽화들의 배치와 내용이 고야의 감정 사이클을 반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점은 고야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이와 같은 벽화들을 그린 것을 감안할 때 더욱 설득력을 지닙니다.
고야의 <개>는 인간세계가 결국 “무(Nada)”라는 것을 깨닫고 앞을 바라보는 고야 자신이며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인 프리드리히가 12-3년 앞서 그린 <바다 앞의 수도승>에서 거대한 자연 속에서 홀로 서있는 작은 수도승의 모습을 연상케도 합니다. 외로워 보이긴 하지만 어떤 위안감을 느끼게 되는 프리드리히의 그림과 달리 고야의 <개>는 1800년 전후 유럽 전역을 휩쓴 카프리초스(인간들의 변덕)를 경험한 화가의 내면을 그대로 투영한 듯 불안하고 지친 모습입니다.
결국 고야는 <<검은 회화들>>에서, 동시대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시도했듯이, 외부세계에 반응한 개인의 내면을 자신의 회화로 표현하고 이를 통해 치유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위 세계에 대한 개인적 반응과 자전적 표현이야말로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미술의 교육적 기능보다는, 일찍이 니체가 헬레니즘 미술의 특징으로 본 “치료사”의 기능이 훗날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현대미술이 도래할 것을 예고한 <<검은 회화들>>의 큰 의의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울러 선생님께서는 노년의 고야가 느낀 여러 복잡한 감정들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자비에 보브와(Xavier Beauvois) 감독의 프랑스영화 <신과 인간>(Des hommes et des dieux, 2010)을 감상해 볼 것도 권해 주셨습니다.
4. 이어진 총회에서는 열띤 논의 끝에 일정 기간 신문수선생님께서 모임의 회장직을 연임해 주시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미 오래도록 연구회를 이끌어 오신 선생님께 다시 부담을 드리게 되어 무척 송구합니다.
또한 꼼꼼히 자료를 준비해주시고 설명해주신 권영자선생님, 다친 다리에도 불구하고 좋은 시간을 선사해주신 김정희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맛있는 떡을 나누어주신 정연정선생님의 배려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