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2018

생태문화연구회: "미국서부 장소성과 문화 이데올로기" / "안데스 고산지대의 경관"

연도 2018
기간 2018. 9. 7
작성자
amstin
작성일
2019-02-18
조회
4018

1. 누그러질 것 같지 않던 폭염도 어느새 지나고, 기분 좋은 바람이 상쾌한 계절입니다. 지난 9월 7일 금요일에 있었던 생태문화연구회 모임의 후기를 올립니다. 권영자, 김여진, 김영미, 김요섭, 박지향, 신두호, 신문수, 안보라, 이규인, 이남석, (이남석 선생님 사모님), 이선주, 이영현, 이유경, 한미야, 황영심(이상 존칭 생략, 가나다 순) 16명의 회원이 모임에 참석하셨고, 신두호선생님(강원대)이  <미국서부 장소성과 문화 이데올로기>,  이남석선생님 (용산공고)이 <안데스 고산지대의 경관>을 주제로 발제를  맡아주셨습니다.


 


2. <미국서부 장소성과 문화 이데올로기>


미국을 대표하는 장소로서 요세미티(Yosemite)을 중심으로, 장소성을 미국 정신, 역사와의 관계성 속에서 살펴보고, 이것이 현대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각인되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서부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에 위치한 국립공원으로서 캘리포니아의 상징적 장소입니다. 미서부를 배경으로 하는 Maverick 같은 영화에서 Death Valley와 요세미티가 등장하는 장면, 그리고 1991년 로드영화 Thelma & Louise 마지막 장면에서Louise가 가속페달을 밟으며 Thelma와 함께 Grand Canyon계곡으로 뛰어드는 장면, 이들이 서부 사막을 달리며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 등은 미국사회에서 서부가 갖는 장소성을 잘 드러냅니다. 미국의 풍경을 주로 찍은 사진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Ansel Adams (1902 –1984)가 찍은 요세미티 사진이나 Albert Bierstadt의 풍경화는 서부 자연을 사람의 존재가 없는 wilderness로 재현했습니다: “인간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태초의 순수한 자연의 모습으로 신의 축복이 내리는 경이롭고 장엄한 장소로서의 모습” (신두호 160)[1]. 그러나 1864년 요세미티를 공원으로 지정할 당시, 그곳은 이미 인디언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사실은 산꼭대기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있으며 국립공원 내에 골프장까지 있습니다. 요세미티 공원 내에는 the Miwok and Paiute사람들의 살았던 Indian Village of the Ahwahnee가 있는데 “a place lost in time and swallowed by American history”라고 하듯, 원주민들의 삶과 역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실 19세기 미국적 문화국가주의(Cultural Nationalism)에서 보듯, 미국인들은 자연경관과 자연사를 유럽의 유구한 문명에 필적할 만한 자랑스런 국가적 정체성으로 내세우며, 이러한 문화적 필요성에서 ‘국립공원제도’를 세계 최초로 만듭니다. 이들 예술가들이 한결같이 요세미티를 “인간문명이 배제된 순수하고 경이로운 야생자연의 모습”(161)으로 그린 이유는 “국가적 내러티브”(national narrative)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Sierra Club의 초대 회장으로서 wilderness의 보존 필요성을 주장한 John Muir의 글에서도 자연에 투사된 백인 문화의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백인들에 의해 발견될 당시 요세미티 밸리의 모습은 야생상태의 자연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인디언들이 생활터전으로 삼아온 현대의 생태학적 원리가 적용되는 잘 가꾸어진 일종의 정원 겸 텃밭”(신두호 195)이었지만, 뮤어는 산에서 마주친 인디언들을 더럽다거나, 지저분하다며, 그들의 불결한 외모는 “고결하고 순수한 야생상태로부터의 타락이며 야생자연에 속할 자격을 상실한 것을 의미”(신두호 200)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강연에서 선생님은 요세미티를 중심으로 미국인들이 자연을 대하는 관점을 한마디로 paradox of American Nature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문화적 자연이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 이어서 이번 여름 18일간 824km에 이르는 여정을 사모님과 함께(일부구간)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신 이남석선생님께서 안데스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dead animals는 모두 CAFO (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eration)에서 온다는 생각에 역겨움없이 고기 요리를 대하기 어려운데, 이곳 안데스에서는 여전히 동물을 들에 방목합니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좁은 산길이 위태로워 보여도 강수가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산사태 같은 자연 재해로 도로가 유실되는 일이 드믑니다. 애초에 이 길들은 안데스에 풍부한 광물자원을 운반하기 위한 광산용 차량들의 운행을 수월하게 하기 만들어졌습니다. 유목민들과 경작농민들은 주거형태나 생활방식이 다릅니다. 경작농민들이 아랫마을에 모여 사는 데 반해, 유목민들은 마을에서 떨어져 각자 독립적으로 생활합니다. 유목민들의 전형적인 가옥은 돌을 쌓아 벽과 담을 만들고 지붕에 띠풀을 얹습니다. 동물을 가두는 울타리 또한 소박하고 나지막한 돌담입니다. 가다가 너무도 배가 고파 불쑥 찾아간 유목민 집에서 양고기가 듬뿍 든 따뜻한 소파 한 그릇을 대접받기도 합니다. 도시민의 눈에는 소박하고 허름해 보이기만 한 집에 살면서도 ‘부족한 게 없다’는 한 유목민의 말은 인상적입니다. 안데스 고원에서 마주한 너른 평원, 그 위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구름은 우리를 시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유목민의 집이 곳곳에 있다고는 해도, 검은 바위와 옅은 갈색빛 흙 세상인 안데스에서 길을 잃지 않고, 휴대할 수 있는 무게가 제한적이라 마른빵과 꿀, 잼만으로 버티면서, 이따금 고도가 최고 5,000m에 이르는 구간도 있었지만 무사히 다녀오신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절로 감탄이 우러나왔습니다.


 


4.  오늘 발표를 위해 멀리 강릉과 양평에서 오셔서 귀한 강연해주신 신두호 선생님과 이남석 선생님, 그리고 오랫동안 연구회 살림을 꾸려 오신 이선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여름 방학, 남미 여행길에 사오신 쵸코렛 코팅 커피빈을 나누어주신 이규인선생님의 배려는 우리 모임 분위기를 더욱 훈훈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