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2012

Mary Oliver의 생태시 읽기 / Literature as Cultural Ecology

연도 2012
기간 2012. 10. 19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5-02-19
조회
4238

참석자: 강규한, 강서정, 김영미, 김원중, 신문수, 오은영, 정은귀, 한미야, 황영심

장소: 미국학연구소 세미나실

  정은귀 선생님(한국외대)의 “Mary Oliver의 생태시 읽기”, 그리고 신문수 선생님(서울대)의 “Literature as Cultural Ecology” 아티클 발제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강연은 정은귀 선생님과 함께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 1935-)의 대표시 몇 편을 함께 읽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국 오하이오 주 메이플 하이츠에서 태어난 올리버는 퓰리처 상을 받은 American Primitive(1983)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약 30여권의 시집과 수필집을 출간하였다. 학자들보다는 대중이 더 좋아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올리버는 문명 비판이나 화려한 수사를 통해 자연에 큰 스케일로 다가가는 남성 시인들과는 달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평범한 자연물에서 느낄 수 있는 일상적 느낌을 마치 오후 산책하듯 가볍고 편하게 포착해 내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올리버의 시는 “Being and Becoming(존재와 (다른 존재로) 되기)"의 긴장이 항상 상존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늘 갈구하지만 이런 합일이 결국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올리버의 시에는 자연에 대한 조용한 사색과 더불어 자연과 하나 될 수 없는 존재인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공존한다. 비록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이미지의 상투성 때문에 종종 페미니즘 학계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자연 세계로의, 특히 드물게 알려진 곳으로의, 지칠 줄 모르는 안내자"(indefatigable guide to the natural world, particularly to its lesser-known aspects)”라는 맥신 커민(Maxine Kumin, 미국의 시인)의 평가처럼 여전히 올리버는 대표적인 현대 미국 자연 시인의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리버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시로 정은귀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총 6편의 시를 추천해 주셨다. 도덕률에 얽매이기 보다는 자신의 자신다움을 찾아 가는 것이 중요다고 노래하고 있는 "Wild Geese(Dream Walk 1986)", 검은 흙탕물 속에서 수련이 솟아나는 장면을 통해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려하는 인간과 인위적인 의미부여에는 무심한 자연의 대비, 그리고 결코 합일할 수 없는 이 둘의 안타까운 운명을 담담하게 풀어가는 "The Lilies Break Open Over the Dark Water(House of Light 1990)", 물고기를 먹은 인간이 물고기로 육화되는 과정을 그림으로서 아메리칸 인디언의 애니미즘을 반영하고 있는 "The Fish"(American Primitive 1983)", 트럭에 치어 죽은 검은 뱀을 보면서 살아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삶속에 죽음이 들어있는 묘한 순환의 아이러니를 잘 포착한 "The Black Snake"(Twelve Moons 1979)", 8월 숲속에서 곰이 블랙베리를 맛있게 따먹는 장면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August(American Primitive 1983)", 불타버린 숲속에서 삶과 죽음의 순환에 대해 조용히 사색하고 있는 "In Blackwater Woods(American Primitive 1983)"까지 총 6편의 시를 통해 올리버 시의 세계에 흠뻑 빠져볼 수 있었다.

  시를 한 편씩 읽으며 모두가 함께 했던 토론 시간에는 1) 올리버의 시 역시 다른 대다수 미국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휘트먼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있다는 점, 2)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을 이입하려 드는 인간과 그저 세상의 질서에 따라 돌아가는 자연의 묘한 대비를 잘 포착하여 결코 하나 될 수 없는 단절의 운명을 잘 드러내었다는 점, 3) 현학적이지 않은 표현이 올리버 시의 장점인 반면 너무 대중적이고 평이한 구절들로 인해 학계에서는 평가가 그리 높지 않은 점, 4) 아메리칸 인디언 전통이 엿보이는 점 등 여러 가지 의견이 교환되었다.

  두 번째는 독일 아우구스부르 대학의 미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후베르트 자프(Hubert Zapf, 1948-)의 아티클 “Literature as Cultural Ecology"(문화생태학으로서의 문학)*를 신문수 선생님의 요약과 설명을 통해 함께 공부하였다.(*Hubert Zapf, “Literature as Cultural Ecology: Notes Towards a Functional Theory of Imaginative Texts With Examples from American Literature.” REAL (Research in English and American Literature) 17 (Tübingen, 2001): 85-99). 이 글은 '문화생태학으로서 문학의 바른 위상 정립'을 위한 기초적 논의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하여 환경 위기에 자극되어 근래에 태동한 문학생태학 혹은 생태비평이 생태환경 이슈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점을 비판하면서 무엇보다도 문학은 문화 체계의 일환으로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먼저 그 동안의 생태문학이 주로 생태환경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창구 혹은 환경문제의 이슈화 무대로서 문학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자칫 문학의 미메시스 기능만을 중시하게 되고, 그 결과 문학을 의식과 태도 변화의 도구로 전락시킬 우려를 불러온 작금의 문학생태학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미국 문학의 자연기 장르의 경우 문학생태학의 전범적 장르로 선양됨으로써 문학의 특징적 가능성, 곧 현실로부터의 미학적 거리두기와 상상적 탐구의 기능을 몰각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소로우의 《월든》을 콩코드 지방의 생태적 현실의 묘사로만 읽는다면 그것은 심각한 “비평적 축소화”(a severe critical reductivism)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월든》은 장소와 자연에 대한 작가의 경험적 지식의 소산이면서 또한 당대 미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던 상업주의 문화에 따른 인간 소외에 대한 비판적 반응이고 더불어 정신과 물질의 상응을 역설한 에머슨적 초월주의 이념을 미학적 원리로 삼고 있는, 문학 고유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문화생태학의 일환으로 문학을 고려한다면 문학 언어를 지시적 기능으로만 환원시키거나 문학을 현실의 직접적 모사로 한정시키는 차원을 넘어서서 언어의 미학적 기능과 그 전복적 에너지, 다시 말해 “대항 담론적 가능성” (the counter-discursive potential)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그는 문학 텍스트가 단순히 내용뿐만 아니라 그 형식적 미학에서도 기존 생태담론의 가정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존의 생태담론은 1) 세상 만물의 연결성 2) 직선적인 발전 과정과 그것을 포함하는 순환 구조의 공존 3) 전체는 부분의 총합 이상 4) 종의 다양성(diversity)과 개별성(uniqueness)의 공존 5) “자연은 단순하고 문화는 복합적“이라는 이원론 거부(자연도 매우 복합적) 6) 자연은 스스로 규제하는 힘을 내재 7) 인간의 문명은 삶의 균형을 깨뜨리는 쪽으로 발달한다는 일곱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점에 있어서 문예미학의 텍스트 또한 상기한 일곱 가지 생태담론의 가정을 대부분 공유함을 밝힌다.

 

1) 문학 텍스트는 분할된 삶의 현실들이 창조적으로 상호 교직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예컨대 공적/사적, 정신/육체, 이성/에로스, 권력/사랑 등의 범주가 교차한다.

2) 유동적이고 과정 중인 삶의 현실은 문학적 경험의 중핵을 이룬다.

3) 문학텍스트에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들이 다원적인 상호연관성 속에서 반영되어 있다.

4) “다양성 속의 통일성”은 문학과 미학의 중요한 구성 원리이다: 근대 이전에는 통일성과 조화가 강조되었으나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는 multiplicity, heterogeneity, strangeness 등이 주목되는 경향이나, 근대 이전에도 다양성은 중요한 자질이었고, 근래에도 통일성이 배척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5) 다양성과 개별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복합성(complexity)인데, 문학 텍스트는 다른 어떤 텍스트보다도 삶의 복합성의 구현을 지향한다. “문학의 생태학적 충동” (ecological impulse of literature)은 정치권력과 여러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기제들에 의한 경험의 환원적 왜소화와 편중화에 저항함으로써 또 억압되고, 주변화되고, 배제되어온 것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삶의 복합성을 회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문학텍스트를 구성하는 다원적 감수성과 서로 다른 구성 방식은 단성적 문화와 독점적 가치 체계의 일방적 지배를 드러냄으로써 인지적, 정서적, 문화적 궁핍화를 가로막는 균형추의 역할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저자는 문학 텍스트의 다섯 가지 특징을 통하여 환경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내용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구조화하는 다양한 형식의 발현을 통해서도 문학 텍스트가 생태학적 세력의 하나를 이룬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이 글에서 가장 핵심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문학이 가지는 사회문화적 측면인 "문화생태학적 기능"(cultural-ecological function)이다. 첫째로 문학은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체계에 내재하는 모순과 결함, 특히 일방적이고 위계적인 이분법적 범주(예컨대 문화/자연, 정신/육체, 권력/사랑)의 적용으로 생명력을 위축시키고 심리적 압박감을 유발하는 것과 같은 사회의 병리적 현상과 모순적 정황을 주제화하고 비판함으로써 "문화비판적 메타 담론(cultural-critical metadiscourse)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두 번째로 문학은 사회의 지배 체계에 의해서 억압되고, 주변화되고, 배제된 것들을 대변하고 가치부여를 함으로써 "상상적인 대항 담론(imaginative counter-discourse)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문학은 억압되고 분리되어 있는 삶의 영역들을 통합하고 담론의 경계를 재편함으로써 "문화담론 체계 전반을 재구성(reintegrative inter-discourse)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문화적 창조성을 쇄신시키는 계기가 마련된다. 예를 들어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주홍글자(The Scarlet Letter)의 경우 문화비판적 메타 담론 측면에서는 청교도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상상적 대항 담론의 측면에서는 “A”자에 대한 다의적 해석 가능성을, 마지막으로 문화 담론체계 전반의 재구성 측면에서는 청교도 지배층인 딤스데일 목사의 경우와 헤스터와의 숲속의 재회 장면을 위에서 언급한 문학의 문화생태학적 기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문화생태학적 기능은 특정한 문학 텍스트에서 모두 수행되기도 하고 어느 한 기능이 주도적으로 행사되기도 하며 시대에 따라 특정한 기능이 더 지배적인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요컨대 문학은 다른 종류의 담론에서 기대할 수 없는 문학 고유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문화적 창조의 가능성을 높이고 문화적 쇄신을 이루어내는 촉매 역할을 하는 점이 다른 어떤 면보다도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신문수 선생님께서는 이 글이 1) 문학의 사회문화적 기능을 심층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문학은 근본적으로 생태적이다”라는 명제에 대한 설명 전거를 제공한다는 점, 그리고 2) 언어의 지시적 기능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문학생태학의 근본적 문제점을 환기시키고 문학은 언어적 구조물이며 문화적 체계의 일부라는 점을 다시금 주지시킨 면에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셨다. 더불어 이 글은 본격적인 의미의 생태학과 문학의 융합을 모색하지 못하고 그저 ‘문학은 본래 생태적이다‘라는 측면에서 그쳐버린 점, 그래서 여전히 사실/가치의 학으로서의 문화생태학의 균형있는 담론이나 방법론의 정립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을 한계로 지적하셨다.

  이어지는 논의에서는 1) 주로 뒤의 단어에 방점이 오는 우리말의 관습 때문에 ‘생태문화’ 혹은 ‘문화생태학’으로 번역되는 ‘cultural ecology’의 우리말이 둘 다 적절하지 못하다는 인식, 2) 이와 더불어 사실의 학으로서의 생태학과 가치의 학으로서의 문학이 잘 융합된 중간지대 모색이 필요하지만 그 지대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3) ‘자연은 단순(simple)하고 문화는 복합(complex)적이다’라는 통념은 명백히 잘못된 것으로서, 생태학의 첨예한 문제의 하나로 자연계의 생태적 복잡계에 대한 규명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문학 텍스트가 생태적이다’라는 논의에서 그쳐버린 이 글로부터 시작해 향후 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부분으로 4)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의 문제점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 5) 진실에 육박할 수 있는 언어의 문제, 6) 문학생태학을 논의하기 위한 방법론의 문제, 7) 문학생태학에 있어서 생태적 문해력의 문제 (생태학과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편의 학문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등이 논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