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W. B. 예이츠와 한국 근대시의 자연 - 정지용과 현대 시인들의 시 / A City upon a Hill : 샌프란시스코 도시 환경과 문학적 심상 공간
참석자: 강서정, 곽효환, 김보경, 김영미, 김원중, 신두호, 신문수, 유수아, 이종주, 장혜연, 차세정, 한미야
장소: 미국학연구소 세미나실
이번 세미나 주제는 곽효환 선생님(시인, 대산문화재단 사무총장)의 “W. B. 예이츠와 한국 근대시의 자연 - 정지용과 현대 시인들의 시”, 그리고 신두호 선생님(강원대학교 영문과)의 “A City upon a Hill : 샌프란시스코 도시 환경과 문학적 심상 공간”이었다.
곽효환 선생님은 2006년 첫 시집 『인디오 여인』에 이어 2010년 두 번째 시집인 『지도에 없는 집』을 발간하신 중견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다. 이번 강연에서는 한국 근대문학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의 작품에 나타나는 자연관을 검토한 후 우리나라 근현대 시인들(정지용, 신달자, 이선식, 곽효환)에게 그것이 수용, 발달, 변화되어 온 양상을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이츠는 1918년 한국 최초의 주간 문예지인 『태서문예신보』에 안서 김억의 번역으로 「꿈」(원제 :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이 처음 소개된 이래로 60여 편이 넘는 시들을 통해 한국 근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시인이다. 예이츠가 이처럼 한국 근대문단에 일찍 소개된 이유는 한국과 아일랜드 모두 외세의 침략 아래 있었던 비슷한 시대상황, 서구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시문학을 주로 소개하였던 『태서문예신보』의 방침과 예이츠의 시세계의 공통점, 그리고 예이츠가 주요하게 다루었던 자연이 바로 한국의 오랜 시적 전통과 일맥상통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곽 선생님께서는 예이츠 시에는 자연에 대한 동경과 모사와 자연과의 대립 및 의식의 우위, 즉 자연친화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연 부정을 보여주는 양면성이 있다고 평가하셨다. 예이츠의 이런 양가적인 자연관은 이후 한국 근대시와 현대시를 통해 꾸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 근대시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정지용(1902-1950)은 서구 모더니즘의 현대적 인식을 바탕으로 세련되고 절제된 언어, 감정의 조화, 선명한 묘사를 통해 탁월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었던 시인이다. 그는 최초로 예술 언어로서 우리말의 가능성을 열었으며 동시대와 후대의 시인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한국 근대시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인들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의 시세계는 감각적 이미지즘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대표작 「향수」)을 담아낸 전통 지향적 초기 시에서부터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중기 시를 거쳐 「옥류동」이나 「구성동」과 같이 동양적 정신세계로 귀의한 후기 시로 나누어진다. 정지용 시에서의 자연은 초기 시의 소박한 향토 정조, 따뜻한 가족사적 세계를 통한 자연에 대한 친화감으로 나타나거나 인간이 자연과 융합되는 동양적 은일의 정신을 구현한 후기 산수시로 나타닌다. 정지용의 이러한 시적 궤적은 한국 근대시사에서 이미지즘이나 모더니즘을 넘어 자연과 하나 된 동양의 전통적인 정신세계까지 새롭게 재해석하여 담아내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이후 많은 후배 시인들에 의하여 동양적 정신세계와 자연을 시 속에 담아내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는데, 대체로 정지용이 일제 치하의 어려운 현실아래 자연의 품으로 숨어드는 모습을 보였다면 후배 시인들의 시는 자연이 속에 담고 있는 세계를 발견하여 그 서사들을 외부로 표출하고자 했다는데 차이점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2011년 출간된 신달자의 시집 『종이』에 실린 「연못」이다. 신달자는 『종이』를 통하여 웅장한 지리산 일대를 큰 종이 폭에 담긴 하나의 세계로 그려냄으로써 단순히 자연의 모사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우주적 질서 구현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이 거대한 그림을 완결짓고 있는 ‘낙관’이 바로 산청 율매마을의 둥근 '연못'이다. 천년동안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을 솟아 올리는 이 연못은 영속적인 생명력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자연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의 근대사를 그대로 응축하고 있는 지리산이라는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는 ‘불꽃의 인장’으로 표현되고 있다. 동양적인 정신세계가 반영된 또 다른 현대시의 예로 이선식의 「바위의 식사」(『시간의 목축』2011에 수록)가 있다. 「바위의 식사」는 우묵하게 패인 바위 표면에 고여 있던 물이 증발하여 다 마를 때까지 저자가 바위를 평화롭게 관찰하면서 쓴 시이다. 바위에 머금은 물이 마르면서 물에 비친 하늘도 나뭇가지도 서서히 사라지는 광경을 바위가 긴 식사를 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발상에서 나온 이 시는 작은 우주의 생성에서 소멸까지를 오버랩하면서 자연과 세계와의 공존과 합일을 잘 담아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곽 선생님께서는 본인의 문학관이 잘 구현된 자연과 관련된 두 편의 시를 소개해 주셨다. 첫 번째는 큰 눈으로 길을 잃고 방황하는 황새에 현실적 전망을 상실한 화자의 아득한 심정과 함께 잊혀지고 싶지 않은 강한 존재론적 역설을 투사한 「길을 잃다」(『인디오 여인』에 수록)와 두 번째는 인적이 끊어진 적막한 겨울의 철원 평야가 품고 있는 사람과 사물의 옛 서사를 상기하면서 그것이 발현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겨울, 평강고원」(『지도에 없는 집』에 수록)이다. 곽 선생님은 ‘시인의 주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가 시인이 속한 환경 혹은 시인을 에워싼 것들에 깃든 사사를 찾고 옮기는 일’이며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만난 사람과 사물과 풍경에 대한 순애보’라고 하셨다. 그런 맥락에서 이 두 편의 시들은 자연이 품고 있던 서사를 제자리로 돌려놓고자하는 저자의 노력의 소산으로서, 한반도 이남만이 아니라 분단 이전 한민족이 뿌리를 두었던 북방,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동아시아와 전 세계 지구촌으로까지 그 도정을 멈추지 않고 시로 승화시키려는 저자의 시와 자연에 대한 사랑을 짐작케 하는 작품이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1) 고향을 잃은 현대인의 삶 자체가 늘 본원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안고 있기에 대부분의 시인들에게 자연친화적 주제가 시적 세계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 2) 정지용의 「구성동」에 나오는 ‘꽃보고 귀양사는 곳’의 원문인 ‘귀향’을 살리는 것이 오히려 고향에 대한 본원적 그리움까지 포함하여 의미의 애매성과 풍부함을 동시에 살릴 수 있다는 의견, 3) 이선식의 「바위의 식사」와 로빈슨 제퍼스(John Robinson Jeffers, 1887-1962)의 “Rock and Hawk”에서 바위를 통해 표출되는 반인간중심주의 사상의 공통점, 4) 김소월의 「진달래 꽃」과 예이츠의 <꿈>의 유사성에서 당시 해외 문학을 무분별하게 수용하였던 우리 근대 문학의 한계가 드러난다는 점 등이 있었다.
신두호 선생님의 안내로 진행된 두 번째 강연 “A City upon a Hill : 샌프란시스코 도시 환경과 문학적 심상 공간”에서는 생태도시로서의 명성이 높은 샌프란시스코의 도시환경을 살펴보고, 샌프란시스코 지역 작가들과 이 도시의 활발한 환경 운동과의 영향관계를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목에 나온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는 원래 마태복음의 예수 산상설교에 나오는 성경 구절로서, 1630년 북미 뉴잉글랜드의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건설을 이끈 존 윈스럽(John Winthrop, 1587-1649)이 전 세계 기독교도의 롤 모델이 되는 공동체(“We must always consider that we shall be as a city upon a hill”) 건설이라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한 이래, 케네디를 비롯한 수많은 미국의 정치가들을 통해 ‘세계의 모범으로서의 미국‘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신 선생님께서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샌프란시스코가 자연 지형적으로나 도시 건설의 역사로나 미국 내 대도시들 중 충분히 생태적 녹색도시의 롤 모델로 볼 수 있는 근거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 제시해 주셨다.
현재 샌프란시스코는 '지속적 성장가능성(sustainability)'을 기준으로 한 미국 내 50개 대도시 순위(출처: How Green is Your City?)에서 포틀랜드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는 미국의 대표적 생태 도시의 하나이다. 샌프란시스코가 이처럼 생태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에는 지정학적인 혜택과 정부와 시민의 인위적 노력 모두가 기여하고 있다. 우선 도시 지역과 샌프란시스코 만으로 이루어진 샌프란시스코는 전체 면적의 4/5 이상이 그린벨트와 물로 이루어진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1800년대 중반 골드러시 이후 급속히 성장한 “instant city”인 샌프란시스코는 도심지와 도심지에 먹거리를 공급하는 주변 농장이 함께 성장해 왔기 때문에, 시골을 파괴하고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하는 대부분의 도시 역사와는 달리, 도시와 시골이 상호 연계되어 발전해 온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정학적 요소보다 샌프란시스코를 생태도시로서의 '언덕 위의 도시'로 만든 요인은 녹색도시를 만들기 위한 시 정부 정책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환경 운동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 우선 샌프란시스코가 미국 내 대도시 중 녹색도시 2위에 랭크된 데에는 고체쓰레기 재활용, 토지 계획과 이용 상황, 에너지 전환율 등 시의 정책적 노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특히 지속적 성장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었던 뉴섬(Gavin Newsome, 2004년-11년까지 재직)시장은 경제와 에너지(태양광, 풍력, 조력), 건축, 교통(대중교통 및 높은 자전거 통근률) 등 다방면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생태도시로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았다. 또한 대표적인 계획도시였던 샌프란시스코는 설계 당시부터 도시 내 녹지조성에 힘을 쓴 결과 전체 면적 중 공원이 차지하는 면적이 미국 도시 중 최고 비율(약 20%)을 보인다. 이런 정부의 노력에 더하여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자발적인 환경의식 또한 그 어떤 도시보다 높다. 1960년대 시에라 클럽을 중심으로 환경보호사상이 대중정치운동으로 최초로 발전했던 곳인 만큼 그때나 지금이나 샌프란시스코는 적극적이고 투쟁적인 시민 환경 운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이처럼 천혜의 자연환경과 정부, 시민의 노력을 바탕으로 생태 도시의 모범이 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지역 작가들이 이 장소를 근간으로 구성해 온 문학적 이미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일찍이 미국의 소설가 유도라 웰티(Eudora Welty, 1909-2001)가 ‘장소는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 신념 등 모든 삶의 모든 상황이 집약되어 있는 교차로(Location is the crossroads of circumstance ... the heart's field ... the ground conductor of all the currents of emotion and belief and moral conviction that charge out from the story in its course)’라고 했던 것처럼 삶이 펼쳐지는 장소와 삶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인 문학은 언제나 깊은 관련을 맺을 수 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남은 시간 동안에는 1) 문학작품의 기술이 이 지역의 이미지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2) 그리고 작가 및 작품이 구체적으로 이 지역의 환경 정책이나 시민 환경의식, 시민 환경운동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검토해 보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지방색을 잘 보여주는 작가로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 브렛 하트(Bret Harte, 1836-1902), 프랭크 노리스(Frank Norris, 1870-1902), 잭 런던(Jack London, 1876-1916), 존 뮤어(John Muir, 1838-1914), 잭 케루악 (Jack Kerouac, 1922-1969),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 1930-), 월러스 스테그너(Wallace Stegner, 1909-1993)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비 토착 작가로서 샌프란시스코의 자연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실제 체험보다는 이미지의 투사를 통한 글쓰기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트웨인이나 하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샌프란시스코는 서부의 자연 풍광에 초점을 두어 미국 프론티어의 마지막 지점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소로 그려지고 있다. 한편 잭 런던의 작품에서 샌프란시스코는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소박한 삶을 영위하고자하는 전원 및 농경주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로 나타난다. 하지만 녹색도시로서의 샌프란시스코의 환경과 지역 작가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존 뮤어 때부터 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신문과 잡지 기고를 통해 샌프란시스코 지역 독자들에게 시에라네바다의 자연에 대한 인식을 지속적으로 고취시켰을 뿐만 아니라 헤츠헤치 댐 건설 반대투쟁을 통해 자연보존 노력에 힘을 쏟았으며 시에라 클럽을 창설하여 샌프란시스코의 진보적 환경 운동을 주도하였다. 뮤어의 이러한 자연 보존을 위한 불굴의 의지와 투쟁정신 덕분에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시민중심의 환경보호 운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활발해졌고, 이후 그의 정신은 비트 시인들과 게리 스나이더와 같은 지역 작가의 작품 활동 및 문화 운동으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토의 시간에는 1) LA와 샌프란시스코의 자연 환경 비교 2) 시에라네바다의 헤츠헤치 댐이나 세크라멘토 강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샌프란시스코의 물 부족 문제 등이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