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학
생태문화연구회: "진화론의 숨은 창시자 월리스의 말레이 제도 탐사기" / "음식의 생태학"
* 참석자: 강혜순, 권영자, 김길중, 김여진, 김영미, 김요섭, 김원중, 김유중, 박찬구, 신문수, 신준환, 안보라, 이규인, 이선주, 이영현, 이유경, 최정은, 허은영, 황영심
* 일시: 2018년 2월 9일
* 장소: 미국학연구소 소회의실
서울대 생명과학부에 재직하고 계신 이은주 교수님께서는 <진화론의 숨은 창시자 월리스의 말레이 제도 탐사기>라는 제목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먼저 진화론의 두 거장 찰스 다윈(1809-1882)과 앨프리드 월리스(1823-1913)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신 뒤, 월리스의 경우 돌턴, 라마르크, 멘델 등과 같은 19세기의 과학자들뿐만이 아니라 인구학자인 맬서스(1766-1834)나 지리학자인 훔볼트(1769-1859)와 같은 인문사회학자들로부터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훔볼트의 남미 탐사여정(1799-1804)이나 우랄, 중앙아시아 탐사여정(1826-1829)은 이후 다윈의 비글호 항해나 월리스의 연구에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말레이제도』(The Malay Archipelago 1869, 1890)는 총 4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연지리뿐만이 아니라 말레이제도에 거주하는 민족들에 대해서도 삽화를 곁들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자료의 채집은 말레이 현지인 수 명과 영국인 찰스 앨런의 도움을 받아 8년 동안 70여 차례의 탐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유명한 월리스라인(Wallace Line)은 멀지 않은 섬들인데도 서로 생물상이 현저히 다른 데 주목하여 그 사이에 설정된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가르는 가상의 선입니다.
『말레이제도』의 2장에 소개된 싱가포르 편에서 “중국 상인은 대체로 얼굴이 넓고 살쪘으며 거만하고 사무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거나 1855년 한 해 현지에서 범에게 살해당한 희생자들이 21명에 이른다고 묘사된 점 등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또한 40장의 말레이 제도의 민족 편에서 “전반적으로 말레이인들은 잘 생기지 않았다.. 어릴 때의 매력적인 외모가 베텔(마약의 한 종류일 듯)과 담배 등으로 인해 일찍 사라진다.”는 언급 등도 이 책이 당시의 신빙성 높은 동식물자료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문화인류학적 가치가 있는 서적인 동시에 지금 보아도 어색하지 않은 여행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토론 과정에서 김길중 선생님께서는 ‘신종’을 기재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해주셨고 김요섭 선생님께서는 말레이시아 일부다처제의 관습을 짧은 평균수명(당시 평균 20세)과 연관 지어 설명해주셨습니다. 황영심 선생님께서는 오랑우탄을 포획해서 표본으로 만드는 문제에 대해, 신준환 선생님께서는 월리스의 문화상대주의적인 태도에 대해 주목해주셨습니다. 말레이제도의 정의와 관련해서 독일의 인류학자인 블루멘바흐(Johann Friedrich Blumenbach)의 인종구분에 대한 신문수 선생님의 말씀도 이해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토론을 마무리하면서 발제자이신 이은주 선생님께서 19세기 당시 이과와 문과의 지식이 융합된 지식인들이 많았음을 특히 강조해주신 것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어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에 계신 김원중 교수님께서 <음식의 생태학>이라는 제목으로 음식과 섭생의 문제를 인문학적 시각에서 살펴주셨습니다(이와 관련해 곧 선생님의 저서『음식과 섭생의 생태학』이 발간될 예정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이나 백석의 무이징게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음식은 사랑’이며 인간 본연의 정체성과도 깊이 연관된 문제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모두는 식량의 노예’인 셈이며 음식과 섭생의 문제는 우리의 존재, 생태 환경적 문제(기후변화, 조류독감, 계란파동, 일본원전의 문제, 유전자 조작식품 등)와 불가분적 관계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김지하의 “나는 ‘밥’이다.”라는 언급이나 게리 스나이더가 ”나는 먹이사슬의 어디에 위치하는가?”라고 주목한 것처럼, 음식은 단순한 생체 연료에 그치는 것이 아닌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세계이고 우주일 수 있으므로 음식 문맹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섭생의 즐거움, 대지공동체, 밥상공동체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육식 vs. 채식이라는 일종의 음식전쟁에 대해서도 언급해주셨는데 한강의 『채식주의자』나 루쓰 오제키(Ruth Ozeki)의 My Year of Meats 가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 은 『잡식동물의 딜레마』(Omnivore’s Dillemma)에서 산업적 먹이사슬의 특성 상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의 대부분은 결국 옥수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코알라가 유칼립투스 잎을 찾듯이 인간도 결국 옥수수를 먹도록 유전자가 적응해가고 있다는 주장은 경각심을 주기도 합니다.
과연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있는 것인지, 결과적으로 소식과 채식 위주의 식사생활만을 영위해야 하는 것인지, 식품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영양주의는 지양해야만 할 문제인지, 진짜 식품이 아닌 식품처럼 보이는 물질(food-looking substance)을 구분하는 문제와 공장식 사육의 문제 등 난제들이 산적한 것처럼 보입니다. 1kg의 소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11kg의 곡물과 220,000 l의 물이, 1kg의 닭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3.5kg의 곡물과 110,000 l의 물이 필요하다는 비교도 흥미로웠습니다. 이와 함께 성장촉진제(DES)의 무분별한 사용과 Sara Lee cake의 허상과 같은 문제도 우리가 음식과 섭생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과 주의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옥수수논쟁에 대해 인문학자와 생태학자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신준환 선생님, 유기농 음식의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신 이규인 선생님, 항생제 오염의 심각성과 One Health System의 문제에 대해 주목하신 강혜순 선생님, 폴란의 이야기는 ‘문명비판’의 이야기라고 지적하신 김길중 선생님, 산업화된 유기농의 환상에 관한 일화를 전해주신 신문수 선생님의 말씀 등은 토론의 열기를 더했다고 여겨집니다.